설 연휴 파일럿 프로그램, 예능의 신흥강자는 누구?

[이현지의 컬티즘<36>] 기존 프로그램과 차별성 필수, 에피소드 풍부해야…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02.24 09:02  |  조회 4571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SBS, MBC
/사진=SBS, MBC
긴 연휴였다. 주말과 붙어있는 2015년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금연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나 연말과는 달리 설 연휴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제사나 추도식 등 가족 행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모여서 반갑기도, 어색하기도 한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서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재밌는 공동활동은 무엇일까. 바로 TV 시청이다.

각 방송사도 이렇게 안방이나 거실에서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 TV를 보는 린백(Lean-Back) 시청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설 연휴 특수를 노리고 많은 준비를 한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방송 3사가 시청률 경쟁에서 역전을 노릴 수 있는 기회이자 신규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쇼케이스의 현장이다. 지난 추석 선보였던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퍼맨')'가 정규방송으로 편성되면서 예능의 최강자가 됐던 것처럼, 이번 설 연휴에는 어떤 파일럿 프로그램이 '제2의 슈퍼맨'이 될 것이냐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KBS는 '스타는 투잡중', MBC는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준비했고, SBS는 '불타는 청춘', '썸남썸녀', '아빠를 부탁해', '영재발굴단'까지 네 개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내놓았다. 최근 예능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SBS는 이번 설 연휴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계획인 듯 하다. 자, 그렇다면 이 중 과연 어떤 프로그램이 정규방송으로 편성이 될 것인가.

/사진=KBS2 '스타는 투잡중' 방송화면 캡처
/사진=KBS2 '스타는 투잡중' 방송화면 캡처
먼저 KBS의 '스타는 투잡중’. 이본, 김재경, 브라이언 등 연예인들이 평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재능들을 보이며 본업이 아닌 다른 직업에 도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김재경의 가죽공예 실력이라든지, 트레이너로 변신한 이본이라든지 스타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정규방송으로 편성되기에는 에피소드가 부족하다. 이미 스타들이 자신의 숨은 매력이나 재능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MBC의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은 확실히 신선했다. 가면 속에 얼굴을 숨긴 8명의 스타들이 오직 가창력만으로 대결한 프로그램. 좋은 선곡으로 집중도를 높이는 음악 프로그램 특유의 강점을 활용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게 만들며 흥미도를 높인다. '히든 싱어'와 '나는 가수다'를 섞어 놓은 듯한 '복면가왕'은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쏟아지는 음악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어떤 차별화된 지점을 내세울 것인가'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할 듯 하다.

/사진=SBS '아빠를 부탁해'
/사진=SBS '아빠를 부탁해'
SBS의 '아빠를 부탁해'는 정규방송으로 편성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판단되는 프로그램이다.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기 위해서는 일단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와 기존 프로그램들과의 차별화 지점이 명확해야 하며, 에피소드가 풍부해야 한다. 또한 고정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확실하고 이들 사이에 소위 '케미(chemistry의 준말, 사람 사이의 어울림)'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SBS '아빠를 부탁해'는 이런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더욱이 가족 간의 단절이 심각해져가는 이 시대에 필요한 공익적인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50대 스타와 20대 딸이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부녀 관계를 돌아보는 관찰 예능프로그램인 '아빠를 부탁해'는 일단 이경규, 강석우, 조재현, 조민기라는 출연진 구성이 탁월하다. 예능에서 잘 볼 수 없는 신선한 구성이며, 이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어 중간 중간 서로의 대화가 소소한 재미를 던져준다. 또한 다정한 아빠(강석우, 조민기), 무뚝뚝한 아빠(이경규, 조재현)으로 나뉘면서도, 각각의 캐릭터 및 딸과의 관계가 서로 겹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다. '아빠와 딸'이라는 복잡 미묘한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러면서도 재밌게 그려냄으로써 기존의 육아 프로그램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가족 예능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확실히 최근 몇 년사이 명절 방송 프로그램의 흐름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외국인들이 한복입고 나와서 윷놀이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식상한 명절 방송들은 사라졌다. 성우의 더빙이 어색했던 외화 시리즈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방송사의 다양한 시도들로 준비된 색다르고 신선한 포맷의 여러 파일럿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되고, 향후 정규 프로그램 편성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예능 프로그램의 수준이 한층 높아지는 선순환이 계속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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