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 PD님, 당분간 요거트는 그냥 제가 먹어보겠습니다

[이현지의 컬티즘<42>] '사실'보다는 '진실'에 초점…'가설'이 '결론'이 돼선 안돼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4.06 10:41  |  조회 5370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JTBC '이영돈PD가 간다' 방송화면 캡처
/사진=JTBC '이영돈PD가 간다' 방송화면 캡처
건강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무엇을 먹느냐를 넘어서,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디서 왔는지까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바깥 음식을 많이 먹을 수 밖에 없는 현대 도시 생활자들은 내가 다니는 식당의 주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불안하다. 가끔 음식물에 섞여 나오는 머리카락이나 담배꽁초라도 보는 날이면 의심은 커져간다.

이런 상황에서 이영돈PD의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는 우리에게 그냥 먹어보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넘쳐나는 먹거리들 중 '좋은 먹거리'를 골라내 줄 지침서의 서문이자 요식사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정의의 심판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업 수익을 올리기 위해 저렴한 식재료를 쓰거나 원산지를 속이거나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던 비양심 음식점들이 심판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말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수백만의 시청자는 방송 직후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형을 집행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KBS1 '소비자고발'에서 다룬 김영애 황토팩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이영돈PD는 해당 황토팩에서 중금속 및 쇳가루가 발견됐다고 했으나 그것이 중금속이 아닌 황토 고유의 성분임이 후일 밝혀졌었다.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에서는 간장게장, 파라핀 벌꿀집에 이어 JTBC '이영돈PD가 간다'의 그릭 요거트 편에서 이영돈PD가 상황을 조작했다는 업체들의 이의제기로 시끄러웠다. 그리고 얼마 전, 이영돈 PD가 요구르트 광고를 계약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잡음은 소음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이영돈PD에 대한 거센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JTBC는 이영돈PD가 출연하고 있던 2개의 프로그램 모두를 폐지했다.

이영돈PD가 비난받는 지점은 두 가지로 보인다. 치우침 없는 사실을 그대로 전해야 할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상황을 설정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자신의 이익 때문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제작할 때,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탐사보도나 다큐멘터리는 '사실'보다는 '진실'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 맞다.

/사진=JTBC
/사진=JTBC
그렇다면 '진실'과 '사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사실'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상태 그대로를 말한다. '진실'은 그 속에 숨어있는, 평상시라면 드러나지 않을테지만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내재된 모습까지를 포함한다.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카메리를 들이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설과 그에 맞는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검사할 때, 일부러 달리기를 시켜서 문제 발생 여부를 보는 것과 같다.

물론 이 '가설'이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PD는 언제나 상황에 대한 유연한 시각을 가져야 하고, 수많은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충분한 사전 조사를 통해 이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PD가 자신의 생각이 너무 확고하거나, 시간문제 등으로 인해 사전 조사가 미흡해진다면 가설은 결론이 되고, '상황 설정'은 '조작'으로 변질된다. 이영돈PD는 문제됐던 몇몇 에피소드들에서 그러한 지점의 중심잡기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일전에 이영돈PD를 특강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감과 확신,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충분하지 않은 자료조사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그릭 요거트로 화제가 된 마당에 요구르트 광고를 계약한 것은 분명히 섣부르고 미숙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의 이전 작업들이나 성과까지 비난받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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