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는 무엇을 풍자하는가

[이현지의 컬티즘<43>] 시청자까지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버리는 구성력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4.13 13:51  |  조회 6676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점심시간에 드라마 이야기가 나왔다. 바쁜 직장인들이 드라마를 이야기하고 재밌다는 평까지 하는 것은 꽤 드문 일이다. 퇴근길에 만난 친구도 같은 드라마 이야기다. 뭐가 그리 재밌냐는 질문에 대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상류층을 풍자하는 건데 웃겨" 우리나라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상류층이 등장한다. 뭐가 다른 걸까. 이 대답만 듣고서는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 포인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보기로 했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 말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에 대한 제작진의 설명은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통렬한 풍자로 꼬집는 블랙코미디'라는 것이다. 확실히 드라마의 시작부터 눈에 띄는 것은 한 층당 300평에 달한다는 으리으리한 집이다. 그리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과도하게 우아한 행동과 말투다. 이들이 하는 말은 매우 모순적이라 실소를 자아낸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이 일류 대학만을 원하는 사회는 안 된다"면서도 자기 아들에게는 "일류 대학 가는 건 당연한 거고"라고 말하는 식이다.

하지만 현대판 '양반전'처럼 '갑'에 대한 풍자인 줄 알았던 '풍문으로 들었소'는 극이 진행될수록 '을'의 다양한 모습들이 더 눈에 띈다. '을'의 첫 번째 모습은 임신과 함께 '갑'의 세계에 편입하게 된 '서봄(고아성 분)'으로 대변된다. 얼떨결에 '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서봄은 교묘하고 영리하게 '갑'의 세계로 편입하는 '을'이다. 상류사회로 가는 방법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영악하게 '갑'의 세계로 편입하지 못하면서도 '갑'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쉽게도 내려놓는 것이 '을'의 두 번째 모습이다. '갑'의 세계로 편입하고 싶어 족보를 세탁하려는 한정호(유준상 분)의 제안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서봄의 아빠(장현성 분), 그리고 서봄처럼 되고 싶어서 재벌가 자제와의 하룻밤을 보내는 서봄의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의 모습이 그렇다.

또 하나는 '갑'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갑'의 세계에 편입되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을'이다. 극중 민주영(장소연 분)은 과거 자신의 오빠에게 내려진 부당 판결에 한정호가 개입한 정황을 밝히려고 '갑'의 세계에 잠입한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그가 그렇게 비판하던 '갑'의 방식이다.

한정호, 최연희(유호정 분)으로 대변되는 '갑'의 풍자적인 모습이 마치 개콘의 '누려'라는 코너를 보는 것 같은 코믹함이 있는 반면, '을'들의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인 나머지 씁쓸한 기분이 들 정도다. '을'의 치밀하고 악착같고 '갑'을 욕하면서도 동경하고 욕망하는 모습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풍문으로 들었소'가 여타 드라마와 다른 지점이다.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사진=SBS '풍문으로 들었소'
또 한 가지 이 드라마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소문'과 '타인의 시선'이다. 극중 스캔들에 시달리는 언니 서누리를 위해 서봄은 양재화(길혜연 분)를 이용해 '서누리가 야심차게 매달렸다'는 풍문을 '의도적으로 한송 사돈 아가씨를 겨냥했다'는 방향으로 바꿔버린다. 이 드라마에서 사건을 쥐락펴락 하는 것은 '실제'가 아닌 '소문'이다. 이 역시 현실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갑'들이 끊임없이 신경쓰는 것은 '소문'을 만들어내는 '타인의 시선'이다. 한정호가 서봄의 집안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가 탈모를, 아내인 최연희가 주름을 신경쓰는 것도 모두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이들에게 '타인의 시선'은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드라마는 전체적인 색감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이 세트장이 아닌 실제 공간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사건의 현장을 정면이 아닌 창문 넘어, 혹은 문 밖에서 비춰줌으로써 '타인의 시선'을 만들어 낸다. 이 때 시청자들은 스스로 '타인'이 되면서 드라마에 몰입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지켜보며 때로 '풍문'을 만들어내는 '타인'이기도 하고 '갑'이 입고 나온 옷의 브랜드를 블로그에 올리며 '갑'을 동경하는 '을'이기도 하다. 의도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은 이렇게 시청자까지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버리는 구성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노련한 배우들의 맛깔나는 연기도 한몫하고 있다. 어쨌든 비슷한 소재와 내용들로 이루어진 드라마들 사이에 간만에 등장한 신선한 드라마가 반갑다. 앞으로 '풍문으로 들었소'가 어떤 방식으로 '갑'과 '을'의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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