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수학소녀'와 '복면가왕' 가면의 차이

[이현지의 컬티즘<52>] 가면의 두 얼굴…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가면은 좋은 무기가 된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6.18 09:01  |  조회 6299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SBS
/사진=SBS
최근 '천재 수학소녀'가 화제를 모았다. 수학 천재소녀로 알려진 김 모양은 지난해 말 하버드대에 조기 합격한 데 이어 올해 초 스탠퍼드대 등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어딘가 익숙한 이 스토리는 2007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신정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리플리 증후군.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다. 학벌주의, 스펙주의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씁쓸한 현상들이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라는 SBS 수목드라마 '가면'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 드라마 속 모든 캐릭터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여자 주인공 지숙(수애 분)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재벌가 여성의 행세를 하고, 남자 주인공 민우(주지훈 분)는 정신병을 앓고 있으나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한다. 그리고 재벌가의 사위인 석훈(연정훈 분)은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그룹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다.

극본을 쓴 최호철 작가의 말을 빌자면 우리는 저마다 가면을 쓰고 산다. 비정규직 월급쟁이가 룸살롱에선 사장님의 가면을, 학창시절 일진이 맞선 자리에선 요조숙녀의 가면을, 아이들을 학대한 어린이집 원장이 TV 앞에선 천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친구와 연인, 가족에게까지 자신의 실제 모습은 감춘 채, 우린 각자의 가면 속에 꼭꼭 숨어 외롭게 살아간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면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히려 본 모습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MBC '일밤 - 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이 그 좋은 예다.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처음 접한 '복면가왕'은 특별할 것이 없는 노래자랑 프로그램이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3년 넘게 퇴짜를 맞던 기획안이란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출연진들로 인해 화제가 되고,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가면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MBC '일밤 - 복면가왕' 방송화면 캡처
/사진=MBC '일밤 - 복면가왕' 방송화면 캡처
가면을 벗었을 때 놀라움이 클수록 우리가 그 출연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 개그맨, 몸매로 더 유명한 스포츠 선수 등 예상치 못한 출연자들이 더 예상치 못한 노래 실력을 뽐냈을 때의 놀라움은 크다. 그들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만 봐 왔었던 것이다. 가면은 그러한 편견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가면은 우리에게 여러 얼굴을 보여주게 하듯이, 그 자신도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불편한 상사와의 자리에서 분위기를 맞추며 즐거운 듯 웃고, 유리한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웃음을 감추고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도 가면일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감정의 가면 역시 어쩌면 사회적 관계망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선의의 거짓말'처럼 반드시 필요한 가면이다.

때로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감춰주기도 하고, 타인의 편견을 감춰서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가면을 잘 활용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아닌 모습을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도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어버리는 가면이다. 우리는 가면을 자유롭게 썼다 벗었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면을 쓴 모습에 취해 가면 속의 나를 잃어버린다면 가면에 잡아먹히고야 말 것이다.

'천재 수학소녀'와 '복면가왕' 가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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