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아이돌 발연기에 묻혔다…드라마 '심야식당'의 첫 인상

[이현지의 컬티즘<55>] 흥행 콘텐츠의 기본적 철학과 아우라의 근원을 읽지 못했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7.09 09:13  |  조회 7063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SBS
/사진=SBS
영국에서 유학하던 때 일이다. "영국인 작가 중 누구를 좋아하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오스카 와일드"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었다면 그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소설은 문장이 유려하고 마치 시처럼 단어 하나에 내포하는 뜻이 깊어서 영어 원문으로 읽어야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그 깊이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혼잣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번역본이 원본의 진수를 담기 힘든 이유는 대부분 표면적으로 드러난 내용과 형식만을 옮겨놓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 번역한 책도, 원문이 주는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숨어있는 의미, 뉘앙스, 분위기, 작가가 그 콘텐츠를 접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한국 드라마는 인기 있는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에 늘 실패하고 만다.

'결혼 못하는 남자', '파견의 품격', '노다메 칸타빌레'. 일본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일본 드라마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리메이크된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일본 드라마 팬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겼고, 흥행에도 크게 성공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지난 4일 방송을 시작한 SBS '심야식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SBS '심야식당' 방송화면 캡처
/사진=SBS '심야식당' 방송화면 캡처
드라마 '심야식당'의 가장 큰 문제는 '음식'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은 시청자들에게 JTBC '냉장고를 부탁해' 혹은 KBS2 '해피 투게더' 속 코너 '야간매점' 같은 역할을 했다. 식당 주인이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들을 사용해 새벽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콘셉트인 만큼, 쉽게 만들 수 있는 소소하고 친근한 야식들이 많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음향효과와 함께 자세히 보여줌으로써 한번쯤 따라 만들어 먹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무엇보다 소소하고 정겨운 음식들과 자정넘어 음식점을 찾아드는 지친 소시민들의 사연이 조화는 '심야식당'의 핵심이다. 이 부분은 국내 창작 뮤지컬 '심야식당'에서도 중점적으로 살려낸 부분이다. 드라마 '심야식당'은 아쉽게도 이 부분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가래떡 구이와 메밀전이라는 음식 선택은 나쁘지 않지만 손님의 이야기가 충분히 녹아들지 못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두 번째 문제는 처음 듣는 순간부터 거슬렸던 '마스터'라는 호칭이다. 국내 어떤 식당에서 주인을 '마스터'라고 부른단 말인가. 제작진은 일본 원작만화를 한국적으로 리메이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내 정서를 생각해 게이바 마담과 스트리퍼를 캐릭터에서 제외시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체 '한국적'이라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까도 얘기했듯이 이 드라마의 핵심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거나 대낮에 돌아다닐 수 없는 직업이라 자정이 넘어서야 밥집을 찾는, 소외되고 지친 이들이 사연을 담은 따뜻한 음식으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적 정서를 이유로 불편한 캐릭터를 다 빼버린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직업이 불분명한 동네 아저씨와 대를 이어 한의원을 하고 있는 한의사가 과연 소외되고 지친 이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결국 중요한 설정은 '한국적'이라는 애매한 기준 아래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마스터'라는 애매한 표현 뿐이다.
/사진=SBS '심야식당' 방송화면 캡처
/사진=SBS '심야식당' 방송화면 캡처
마지막으로 1화에서 등장한 아이돌그룹 위너 멤버 남태현의 연기력이다. '발연기'가 정도를 넘어, 장수원이 로봇연기로 화제가 된 것 같은 노이즈 마케팅을 의도한 게 아닌가 잠시 고민할 정도였다. 드라마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1화에 굳이 그를 캐스팅하고 그런 충격적인 연기를 그대로 내보냈다는 것은 드라마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없거나, 그 모습을 그대로 방송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시청자들을 무시하거나, 노이즈마케팅으로 드라마를 성공시키려는 얄팍한 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쿄 뒷골목을 서울 종로 뒷골목으로 설정한 것은 꽤 그럴싸했다. 주인공 김승우에 대한 아쉬움이 많지만 목소리 톤이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잘하지만 한국어 작문에 서툰 사람이 번역해 놓은 문학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흉내 낸 느낌말이다. 흥행 콘텐츠가 내포하고 있는 기본적 철학, 그 아우라의 근원을 읽지 못한 제작진의 미숙함이 아쉽다.

공허한 아이돌 발연기에 묻혔다…드라마 '심야식당'의 첫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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