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반일, 애국심과 이기심 사이를 방황했던 사람들
[이현지의 컬티즘<60>] 영화 '암살', 같은 집에서 나온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아온 이야기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08.13 15:23 | 조회 6286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암살' 포스터/사진=(주)쇼박스 |
개봉 3주 만에 800만을 거뜬히 넘긴 영화 '암살'은 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사적 사건을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는 것과 영화 '오션스 일레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화려한 출연 배우들, 그리고 그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 최동훈 감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세련된 영상미 등 수많은 흥행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10부작 드라마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들과 관련된 수많은 스토리들이 펼쳐지는데도 리듬감 있는 전개로 이야기가 잡다하게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으며,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전혀 지루함이 없게 흘러간다.
영화 '암살' 스틸컷/사진=(주)쇼박스 |
어린 시절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잡혀서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후 일본의 첩자가 된 염석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인에게 아첨하고, 아내와 딸까지 서슴없이 죽이는 뼛속까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고, 가장 믿고 따르던 부하를 칼로 찌르는 그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왜 그랬냐는 마지막 질문에 "광복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울부짖는 염석진을 보는 관객들의 심경이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암살' 스틸컷/사진=(주)쇼박스 |
미국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자신이 쓴 책에 나오는 유명한 살인자 두 명에 대한 르포를 쓸 때, "그 살인자와 나는 같은 집에서 살았던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앞문으로 나왔고, 그는 뒷문으로 나왔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암살'의 최동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주인공 염석진과 안옥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말을 인용했다. '암살'에서 투철한 애국심을 지닌 사람과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같은 집에서 나온 뒤 전혀 다른 방향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천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둔 '암살'은 재관람 열풍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단순히 오락성이 높은 영화가 아닌, 광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광복 70주년이다.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보다는 이제는 조금 더 진지하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광복을 조명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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