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이 아닌 집안일"…영화 '사도' 속 아버지와 아들

[이현지의 컬티즘<66>] 세대 단절의 시대,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09.24 11:34  |  조회 6172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사도' 포스터/사진=(주)쇼박스
영화 '사도' 포스터/사진=(주)쇼박스
*영화 '사도'의 내용이 일부 포함됐습니다.

아버지는 법학을 전공하셨다. 10년 만에 얻은 아들이 '관직'에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셨던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서였다. 오빠 역시 법학을 전공했다. 할아버지의 원을 끝내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였다. 문과보다는 이과적인 성향을 보였고, 활발하고 영특한 사람이었지만 아버지의 높은 기대에는 늘 미달이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점잖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오빠는 항상 아버지에게 혼이 났고, 어린 시절의 활발함은 점점 사라져갔다.

지난 16일 개봉 이래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영화 '사도' 역시 이와 비슷한 부자관계를 그리고 있다. 어머니가 아들의 죄를 고하고, 아버지가 뒤주에 가두어 죽이라는 명을 내리고, 장인이 명을 시행한 사도세자의 비극은 이미 많은 작품의 소재로 쓰이며 잘 알려진 내용이다. 실화나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이미 결말이 알려져 있다는 단점을 짊어진다. 게다가 역사적 사건 자체가 가진 비극성이 영화를 무겁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세자를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보다 형식이다. 즉,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영화 '사도'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는 날을 전면에 배치한다. 그리고 그 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8일간의 시간 동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또한 이 사건에 대해 '나랏일이 아닌 집안일'로 시선을 옮겨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화를 둔다.

영화 '사도' 스틸컷/사진=(주)쇼박스
영화 '사도' 스틸컷/사진=(주)쇼박스
철저한 고증을 통해 90% 가까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이 영화는 영화 '황산벌', '왕의 남자' 등을 제작한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서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객들을 불편하게 할 영화"라는 이준익 감독의 평 만큼은 아니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힘일지는 몰라도, 중간 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고, 가끔 대화 중 사극의 말투가 아닌 현대의 말투를 활용하면서 어느 집안에서나 있을 법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배우들의 열연 역시 이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특히 영조 역을 맡은 송강호가 사도세자가 죽기 직전 독백신이 압권이다. 대사로만 이루어진 장면임에도 장장 9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전혀 지루함이 없이 절절한 감정에 몰입하게 한다. 유아인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의 모습을 제대로 연기한 유아인은 이번 영화에서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 점점 정신을 잃어가는 모습을 열연함으로써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 외에도 혜경궁 홍씨 역의 문근영 등 연기파 배우들이 관객의 가슴에 오랜 잔상을 남긴다.

영화 '사도' 스틸컷/사진=(주)쇼박스
영화 '사도' 스틸컷/사진=(주)쇼박스
"이 영화는 '킬링타임' 용이 아니라 '세이빙타임' 용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사도'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를 느끼며 스트레스를 풀고 오는 영화가 아니라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유사감정'을 통해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끼면서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내가 나의 아버지와 오빠를 떠올렸듯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닦아내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마도 누군가를 떠올렸거나 자신의 모습을 대입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빠도 '관'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현명한 아내와 귀여운 아들도 얻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다시 친밀한 부자관계를 회복했다. 아버지는 한 순간도 오빠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영화 '사도' 역시 마찬가지다. 마흔 넘어 얻은 외아들에 대한,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서로 다른 방식의 사랑. 그것이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세대 단절의 시대, 다시 한 번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다.

"나랏일이 아닌 집안일"…영화 '사도' 속 아버지와 아들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