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와 '내부자들'의 흥행이 말해주는 것

[이현지의 컬티즘<76>] 실화의 무게감과 멜로적 허구의 시너지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6.01.07 15:14  |  조회 5797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히말라야'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주)쇼박스
영화 '히말라야'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주)쇼박스

내 취미는 스쿠버 다이빙이다. 무거운 산소통을 메고 물 속을 돌아다니는 과정은 사실 쉽지만은 않다. 검은 바다 아래를 산소통 하나에 의지해 돌아다니는 것은 때로 무섭고 힘들다. 힘든 것을 참 싫어하는데 어쩌다 시작한 다이빙의 매력에 빠져 벌써 레스큐 다이버 자격증까지 땄다. 어쩌면 도전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래서다.

영화 '히말라야' 역시 도전에 관한 이야기다. 해발 8750m 히말라야 데스존에 묻힌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떠난 엄홍길 대장과 원정대의 이야기다. 영화를 본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라면 "에베레스트에 직접 올라갔다 온 기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대한 자연을 향한 무모한 도전과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지역에서 생과 사를 앞에 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 그들의 우정과 희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을 준다.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이야기는 이미 다큐멘터리로도 많이 알려진 실화다. 실화라는 무게감이 예정된 감동과 눈물로 영화의 전체적인 틀을 견고하게 감싸고, 그 안에서 동료들의 우정과 희생이라는 멜로적 허구가 디테일하게 엮이며 영화의 감동을 고조시킨다. 배우들의 열연도 한 몫 했다. 실제로 산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영화를 촬영했다는 황정민과 정우는 마지막에는 정말 산쟁이가 된 듯한 느낌마저 준다. 산악영화는 흥행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 준 '히말라야'의 강점은 바로 이러한 구성과 주연 배우의 열연 덕분일 테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산을 오르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다, 에베레스트에 직접 올라갔다 온 기분이 든다는 평이 많은 이유는 그래서다. 거의 100퍼센트 실화에 가까운 이 영화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준다. 실화에만 기대려면 영화보다는 차라리 다큐멘터리가 낫다. 이미 동일한 내용의 다큐멘터리도 있는 상황에서 관객들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다.

물론 주인공과 관계자들이 아직 살아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스토리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허구적 스토리를 설정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분명히 강약조절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휴먼 원정대 멤버들이 모이는 장면은 너무 급하게 처리되는 바람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주인공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각자의 캐릭터나 상황이 대사 한두 줄로 처리되어 아쉬웠다.
영화 '내부자들' 스틸컷/사진=(주)쇼박스
영화 '내부자들' 스틸컷/사진=(주)쇼박스
현실과 허구를 적절히 엮어 흥행 몰이를 하고 있는 또 한편의 한국 영화 '내부자들'은 이와 정반대로 너무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다. 실제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과 유사한 현실적인 사건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갑자기 비현실적으로 정의로운 검사가 나타나서 타고난 정치깡패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들며 모든 것을 해결해버린다. 통쾌하긴 하지만 시작 부분의 웅장한 기대감이 끝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결국 영화적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현실과 허구의 적절한 조화, 그 지점을 찾는 일일 것이다.

여러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는 주말 사이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을 목전에 두고 있다. '내부자들'은 지난달 31일 개봉된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아마도 이 두 영화과 주목받는 이유는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히말라야'의 무모한 도전과 동료를 위한 숭고한 희생, '내부자들'의 나쁜 권력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그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것들도 같지 않을까.

'히말라야'와 '내부자들'의 흥행이 말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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