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세대의 문화 반란…"우리도 영화 챙겨본다 전해라~"

[이현지의 컬티즘<78>] '부양대상'이길 거부하는 5060세대…콘텐츠 시장 선점 위한 '신의 한 수'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6.01.29 08:16  |  조회 12272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그렇게 하라고 전해라~."

좀처럼 농담이 나오기 어려운 간부회의 자리에서 회장님의 한 마디에 전원 웃음이 터졌다. 우연치 않게 그 회의를 참관했던 나는 도대체 그 '전해라'는 한마디가 왜 그렇게 웃긴건지, 그것에 대해 왜 모두 한마디씩 보태는 건지 모르면서 따라 웃다가 나왔다. '개그콘서트'에서라도 나온 유행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가수가 2013년에 발표한 노래 가사란다. 김애란의 '백세인생' 말이다.

'백세인생'은 익숙한 아리랑 가락에 '~전해라'라는 가사가 반복돼 금방 뇌리에 각인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성인가요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누군가 SNS에 '짤방(글에 첨부된 사진)' 형식으로 올리기 시작하면서 화제가 됐고 MBC '무한도전' KBS2 '개그콘서트' SBS '스타킹' 등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단숨에 유행가가 됐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KBS2 '오 마이 비너스'에도 여주인공 신민아가 '백세인생'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면서 그 화제성을 입증했다.

유행의 시작은 젊은 층이다. SNS에 '짤방'을 올린 것도, "학원가기 싫다고 전해라~" 등으로 변용해서 사용하며 확산시키기 시작한 것도 10대,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하지만 이후 폭발적인 인기의 근간에는 중장년층부터 노년층이 있다. 이들은 젊은 층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이 노래에 귀 기울인다. '아직은 젊어서' '할일이 아직 남아' '아직은 쓸만해서'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 등 나이대별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각기 다른 이유의 위트있는 노랫말이 공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백세시대 현상은 유행어에 목마른 시대, SNS를 통한 콘텐츠의 빠른 전파, 국민의 냄비근성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문화콘텐츠의 주 대상에서 늘 밀려나 있었던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문화 전파력과 파급력도 주목할 만 하다.

영화 '장수상회' 스틸컷/사진=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장수상회' 스틸컷/사진=CJ 엔터테인먼트
고령화 시대라는 말이 등장한 지 꽤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사실 중장년층과 노년층에 대한 문화적 주목도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문화향유의 주된 대상이자 소비계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의 50~60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보유한 세대다. 1980~1990년대 대한민국 최대 호황의 시기를 누렸고 교육수준과 정치, 문화, 사회적으로도 어느 세대보다 경쟁력이 높다. 이들은 더 이상 '나이 먹은' 부양 대상이길 거부한다.

우리나라도 콘텐츠 주 대상 연령이 예전에 비해 높아졌다. 예전에는 10대들을 겨냥한 프로그램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에 비해, 20대 후반부터 30~40대를 겨냥한 프로그램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어쩌면 콘텐츠 소비의 큰 축이 노년층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일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영화 '장수상회' 스틸컷/사진=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장수상회' 스틸컷/사진=CJ 엔터테인먼트
이미 선진국에서는 전후 베이비부머들을 중심으로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등의 콘텐츠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제대로 쉬고 싶다는 열망을 반영해 주머니 사정이 좋은 이들을 집중 겨냥한 것이다. 미국의 한 조사기관은 50대 노인 대상 평생교육시장 규모를 60억 달러로 추정했다. 2년 전보다 20억 달러나 늘어난 수치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5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바로 60대 이상 인터넷 이용자들의 빠른 증가와 넓어지는 활용 폭이었다고 한다. 집에 가면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미 환갑을 넘긴 우리 부모님들이다. 인기 있는 영화는 꼭 챙겨볼 정도로 문화 향유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도 노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늘 제일 먼저 마감이 된다. 노년층의 문화소비력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들을 겨냥한 문화 콘텐츠를 선점하는 쪽이 콘텐츠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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