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트'는 '응팔'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이현지의 컬티즘<77>] 각색은 창조의 직업…드라마 충성도 이을까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6.01.21 10:02  |  조회 3766
(왼)'응답하라 1988' 포스터, (오)'치즈인더트랩' 포스터/사진=tvN
(왼)'응답하라 1988' 포스터, (오)'치즈인더트랩' 포스터/사진=tvN
해리포터 시리즈를 책으로 먼저 읽지 않았던 나는 영화를 무척 재밌게 봤다. 하지만 책을 먼저 읽었던 사람들은 영화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후에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의 빠른 전개와 달리 디테일한 설명들이 이어져 지루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반대로 나는 어린시절 무척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영화화 되어 나왔을 때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 부분은 왜 빠진거지? 저 중요한 부분이 왜 저렇게 하찮은 분량으로 나오는거지? 개츠비 역에 저 배우가 어울리나?

이러한 양가적인 상황은 동일한 콘텐츠를 어떤 매체를 통해 보여주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매체를 먼저 접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지난 4일 대단원의 막을 올린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이하 '치인트')'처럼 원작이 큰 인기를 끌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 '치인트'는 주인공 선정에서부터 '치어머니(웹툰의 드라마화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사람, 치인트+시어머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화제가 됐다.

/사진=tvN '치즈인더트랩' 공식 홈페이지
/사진=tvN '치즈인더트랩' 공식 홈페이지
시기는 좋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막을 내리는 시기와 맞물려 대상 연령대 시청자들이 대거 '치인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개 드라마의 성패는 2~3주 안에 결론이 나는 법. 큰 관심과 기대 아래 이제 막 3주차를 끝낸 '치인트'는 이 높은 관심을 드라마에 대한 충성도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칭찬부터 하자면 드라마 '치인트'는 원작의 주요요소를 잘 짚어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히고 섥히는 심리적 감정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 관계를 그려내는 것에 있어 드라마는 원작과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2D가 아닌 3D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다. 이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가 썼던 방식과도 같다. 사건의 속도감을 살리고 몇 가지 임팩트 있는 사건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주인공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단번에 시청자들에게 어필한다. 실제로 원작에서 꽤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고 있음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이 드라마가 전개된다.

/사진=tvN '치즈인더트랩' 공식 홈페이지
/사진=tvN '치즈인더트랩' 공식 홈페이지
여주인공 홍설(김고은 분)의 캐릭터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원작의 홍설은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다. 어떤 일에도 깊게 연루되고 싶어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삭이는 타입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착해서도, 관계에 미숙해서도, 순진해서도 아닌 현실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다.

날카롭고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감으로 모든 상황을 외면하는 것이 홍설의 모습이고, 바로 그것이 '치인트'가 기존의 연애 판타지 소설과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이는 홍설은 약간은 어리버리하고 답답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전형적인 연애소설의 주인공의 느낌에 가깝다.

물론, 드라마가 원작과 똑같으려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 더 큰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백인하(이성경 분)다. 백인하는 원작에서도 꽤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큰 키에 아름답고 화려한 외모로 길을 걷기만해도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왈가닥에 철이 없는 캐릭터. 이 만화적인 캐릭터를 만화가 아닌 드라마에서 똑같이 표현해내려고 하면 지금처럼 과장되고 부담스러운 연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사진=tvN '치즈인더트랩' 하이라이트 영상 캡처
/사진=tvN '치즈인더트랩' 하이라이트 영상 캡처
미생의 드라마 작가로 참여했던 지인이 내게 "각색은 창조의 작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 드라마만의 매력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처음 우려와는 달리 드라마 '치인트'는 큰 틀에서 순항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원작이 아닌 드라마 속 캐릭터에 익숙해지고, 원작에서의 재미요소인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설정과 극의 전반을 흐르는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면 '미생'에 못지않은 인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에피소드들은 많다. 원작과 같으면서도 다른, 드라마만의 매력을 발산하길 기대한다.

'치인트'는 '응팔'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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