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스릴러'라는 양날의 칼…곽재용의 '시간 이탈자'

[이현지의 컬티즘<89>] 스릴러 장르의 '개척'보다는 '새로운 멜로' 쪽에 가까운 영화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6.04.21 08:30  |  조회 2587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시간 이탈자' 포스터/사진=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시간 이탈자' 포스터/사진=CJ 엔터테인먼트
"아 진짜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옆자리 남자는 영화를 보는 중 정확히 세 번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성격이 좀 이상한 사람인가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그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는 아마도 '타임리프'를 교묘히 활용한 정통 스릴러물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시간 이탈자' 말이다.

30년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두 남자가 꿈을 공유 하는 내용의 영화 '시간 이탈자'는 최근 종영한 tvN '시그널'의 인기 열풍을 업고 관객들의 초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또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을 연출한 '멜로의 제왕' 곽재용 감독이 처음 도전하는 스릴러 장르라는 점도 기대를 모았다. 곽재용 감독은 심지어 이 영화에 대해 "첫 데뷔와 '엽기적인 그녀'를 통한 코미디 장르 데뷔에 이어 스릴러 장르로 세 번째 데뷔하는 작품"이라며 "정말 해보고 싶은 장르였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곽재용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에도 멜로 드라마가 담겨있다며, 한국 스릴러가 너무 '드라이'하다고 이야기한다. '시그널'에도 분명히 멜로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사실 감성적인 멜로는 스릴러 장르에 썩 잘 어울리는 요소가 아니다. 더욱이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을 지키면서 멜로적 요소를 가미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멜로적 요소가 너무 강하거나 스릴러의 구성이 충분히 촘촘하지 않을 때 스릴러는 쉽게 멜로에 전복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시간 이탈자'는 어떨까.

영화 '시간 이탈자' 스틸컷/사진=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시간 이탈자' 스틸컷/사진=CJ 엔터테인먼트
'시간 이탈자'는 분명 이러한 점에서 부족함이 많다. 스릴러 영화에서 중요한 디테일한 구성, 즉 과거와 현재를 이어붙이는 긴밀성과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아쉽다. 큰 사고를 당하고 꿈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두 남자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이 둘 앞에 나타난 여자. 꽤 재밌는 설정이다. 관객들과 두뇌 싸움을 벌이며 끝까지 조마조마함을 놓치지 않게 할 법도 한데 영화는 너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개된다. 급기야 관객들이 먼저 범인을 눈치 채고 주인공이 범인을 알아내기를 기다리는 지루함까지 발생하고 만다.

이렇듯 스릴러 장르로써의 부족함을 내재한 이 영화에서 곽재용식 멜로는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관객들이 주인공들의 감정에 동화되게 만들면서 스릴러의 느슨함을 채워주기도 하고, 동시에 스릴러 장르라는 색깔을 지워버리는 역할도 한다. 이 지점에서 스릴러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곽재용식 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선사하며 호불호가 갈린다.

영화 '시간 이탈자' 스틸컷/사진=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시간 이탈자' 스틸컷/사진=CJ 엔터테인먼트
스릴러를 포기하고, 멜로에 주목한다면 이 영화는 서정시처럼 아름답다. 멜로의 감성이 충만한 클래식한 순애보를 그리면서도 신파로 흐르지 않는 매끄럽고 신선한 구성은 곽재용 감독의 장점이다. 게다가 여배우를 아름답게 보이게 찍기로 유명한 감독답게 "여배우가 바지를 입고 뛰는 모습은 하나도 애처롭지 않다"며 흰색 원피스에 맨발로 비오는 숲속을 뛰어 도망치는 여배우를 그려내는 감독의 디테일은 이러한 멜로적 감성의 증폭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전문가 평가가 썩 훌륭하지는 않지만 현재 '시간 이탈자'은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극장 예매 분포도에서 여성이 남성의 두 배를 차지할 만큼 여성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결국 곽재용 감독은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기 보다는 새로운 버전의 멜로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고 보는 편이 더 옳겠다. 웰메이드 멜로가 많지 않은 지금, 그것 역시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감성 스릴러'라는 양날의 칼…곽재용의 '시간 이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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