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흥행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이유는?

[이현지의 컬티즘<95>] 편안하긴 하지만 '박찬욱'이란 이름의 기대에는….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6.06.09 09:25  |  조회 8101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아가씨' 포스터/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아가씨' 포스터/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올드보이'부터 '친절한 금자씨' '박쥐' '스토커' 그리고 아이폰으로 촬영한 단편영화 '파란만장'까지 모두 내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었던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아가씨'를 개봉 전부터 기다려왔던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현재 호평 속에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하고 있다.

영화 '아가씨'는 영국의 소설가 세라 워터스 작가의 '핑거스미스(Finger Smith)'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소매치기 숙희(김태리 분)는 백작(하정우 분)에게서 귀족 아가씨(김민희 분)의 재산을 가로채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녀는 하녀가 돼 백작이 아가씨와 결혼하도록 돕는데, 그 와중에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겨 혼란스러워한다.

책을 먼저 읽지 않은 나로서는 1부의 반전이 무척 신선했고,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감각적 영상미와 신인 김태리의 연기도 감탄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말미에 어쩐지 전작들에 비해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아가씨' 스틸컷/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아가씨' 스틸컷/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먼저 아가씨와 숙희의 사랑이 진행되는 과정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성간의 사랑이 아닌 동성 간의 사랑, 그것도 아가씨와 하녀의 사랑이 그려지려면,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외설적인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그려지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장면을 투자했어야 한다.

금속 골무를 낀 손톱으로 어금니를 긁어주거나, 서로 예쁜 옷을 입혀주는 장면 후에 갑자기 성적인 흥분을 느끼고 육체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모든 사건이 생략되고 바로 결론으로 치닫아버리는 지극히 포르노적 전개방식이다.

특히 뒤로 갈수록 이 부분이 더 마음에 걸리는데, 2부에서 밝혀지듯이 애초에 숙희 뿐 아니라 아가씨 역시 서로 속고 속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난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숙희가 초반에 갓난아이를 안고 "나도 젖을 물려주고 싶어"라고 말한 것을 아가씨와의 베드신에서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아가씨에게 모성애적인 사랑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예측해볼 수도 있다.

아가씨 역시 남성들 앞에서 음란한 소설을 읽어주고, 삼촌에게 학대당하며 길러지는 과정에서 남성들에게 환멸을 느꼈고, 그로 인해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됐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상황 설정이 관객들에게 억지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위해서는 조금 더 참을성 있고 세밀한 묘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영화 '아가씨' 스틸컷/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아가씨' 스틸컷/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또한 영화에서 3부는 사족이다. 1부에서 깜짝 놀랄 반전을 주었고, 2부에서 그에 대한 다른 입장과 전개를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의 의도는 모두 전달됐다. 3부의 진행은 일견 권선징악적인 모티브로 통쾌감을 주기는 하나 그 전개가 너무 허술하다.

완벽한 일본인으로 살아가며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은 영악한 이모부가 한 순간 경계를 풀어버리는가 하면, 백작은 아가씨에게 갑자기 사랑에 빠지며 너무도 쉽게 속임수에 넘어간다. 차라리 1,2부의 내용을 늘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를 조금 더 내밀하게 했다면 영화는 좀 더 완성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다.

소설 '핑거스미스'의 3부 내용은 영화와 다르다. 브라이어의 대저택을 벗어나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진흙탕 같은 사회에서 제대로 쓴맛을 본 두 여주인공이 배신감과 악에 받쳐 스스로 추락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진창 속에서도 어찌할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본능적인 사랑의 감정을 조명한다. 영화 '아가씨'의 3부에서 두 여주인공의 애틋한 로맨스를 부각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관객들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한 대중적인 성취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우리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기대했던 정도의 예술적 완성도가 채워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영화 '아가씨'…흥행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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