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 없는 남자의 현실, 소개팅 합격 기준이 따로 있다고?

Style M  |  2015.09.04 11:09  |  조회 1039

[김정훈의 '없는 남자' -1] 돈 없는 남자 - 개인 성격도 물질적 풍요에 비례하는 세상


오프라인이고 온라인이고 남자들이 문제란다. 오프라인에선 소극적인 남자들을 향한 여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온라인에선 남성들의 전투적인 악플이 연애와 사랑의 근간을 후벼판다.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왜 그리 불만이 많은지. 결핍 있는 남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들춰주는 'OO 없는' 남자 이야기.


/사진=Tax Credits in Flickr


처서가 지났다. 연애의 계절 가을이 다가온 게 확실히 실감난다. 지난주에만 두 건의 소개팅을 주선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여자가 바라는 소개남의 조건도, 남자가 강조하는 소개남의 스펙도 거의 동일하게 나열 됐단거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나이 35, 키 178, SKY 졸업, 의사 집안, 대기업 과장, 도곡동 주택보유, BMW5, 영어·중국어 능통.' 필요한 기능만 갖춘 연인 로봇이라도 만들고 싶은 걸까.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나열인 것 같았다. 닮은꼴은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4년제 대학 졸업, 학점 3.7 ·토익 950 ·오픽 AL이상'이라며 취업커뮤니티에 올라온 어느 기업의 합격 커트라인과도 비슷했고, '화면크기 15인치 급, 시리즈 인텔 코어 i5, 메모리 16G, SSD용량 128GB'과 같은 최신 노트북 사양과도 닮아 있었다.


고사양의 노트북을 원하는 목적은 안정된 게임구동과 원활한 그래픽 작업 등이다. 기업에서 고스펙 직원을 뽑는 건 능력 있는 인재를 통한 효율적인 이익창출을 위해서다. 그럼 위의 기준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소개팅의 목적은 뭘까.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안정된 미래를 꾀해야 하지 않겠냐고 다수의 여성들은 말한다. 편의를 위해 고스펙을 찾는 건 매 한 가지란 얘기다.


그런데 이들에겐 다른 점이 있다. 보다 높은 사양의 노트북을 사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인재 확보를 위해선 높은 연봉을 제시해야 할 거다. 그런데 고(高)스펙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여성들이 돈을 더 지불하고 있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백화점에서, 숙박업소에서 남성들은 더 많은 돈을 낸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성들도 많다. 그래서 그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바로 넉넉한 돈 이다. '쩐의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세상이 됐다.


/사진=pictures of money in Flickr


통장잔고가 아닌 능력을 보는 거라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런데 명예, 권력, 지성 및 체력 등 남자의 능력에 대해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어렵다. 하지만 재력이 곧 능력의 증명이 될 때가 빈번하다는 건 남녀 모두 동의 할 듯 싶다. 누구나 부자가 되길 꿈꾸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능력=돈' 이라고 편히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소개팅의 합격 기준만 봐도 그렇다. 건강관리를 위해 의사를 만나거나 법률자문을 위해 변호사를 원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대기업 과장의 직업의식과 업무 성취도에 홀리는 사람도 없을 거다. 수입차가 국내차보다 안전하고 서비스 보증기간이 길어서 좋다면 본인이 소유하면 되는 일이다. 직종, 자가 주택 및 차량의 유무가 그 사람의 인성이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쩐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기로 쓰일 확률은 높겠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능력이나 성격조차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비례한다고 여겨지는 세상이다. 오죽하면 용이 태어나는 개천은 적어도 강남에 있는 양재천은 돼야 한단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여유가 있어야만 다양한 지적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린 경험했다. 지나친 결핍 없이 자란 사람이 타인을 더 배려할 수 있다는 것에도 이견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 또 그런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


/사진=Tax Credits in Flickr


현명한 여자는 남자의 가능성을 본다는 건 옛말이다. 과거엔 여성의 사회진출 환경이 척박했다. 연봉의 상승원리 등을 여성들이 직접 체감할 길이 없었으니 남자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점치는 게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다르다. 연봉 3000이 3억 되는 게 쉽지 않음을 모르는 여성이 어딨을까. 몇 차례 연애 후엔 가난한 남자가 부유한 남자보다 성숙한 인격을 갖췄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무너진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인데 굳이 궁핍한 현실 속의 남자를 선택하려는 이는 없다. 물론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남자의 집안을 우선시 하는 현명한(?) 여자들도 많지만.


돈이 많은 사람은 무조건 연애를 잘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돈 없는 남자가 편히 연애할 수 있는 세상은 더더욱 아닌 게 분명하다. 보고 싶다는 그녀에게 가기 위해선 왕복교통비가 필요하고, 편지를 쓰려면 편지지를 살 돈 정도는 있어야 한다. 나 역시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 네가 내게 더 표현을 해 달라는 남자가 얼마나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 밥값을 선뜻 지불하는 여자는 개념 있다며 칭송받지만 그런 데이트가 반복되면 능력 없는 남자로 평가될 뿐이다. 밥값은 내더라도 모텔비는 내기 싫다는 여자 친구와는 최소한의 사랑을 나누기도 힘들다.


이런 척박한 현실을, 여성을 나무라기만 하는 남성들에겐 확실히 조언하고 싶다. 재력은 부지런함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물려받는 재산 때문에 시작점이 다른 경우가 많긴 하지만, 부지런히 노력하면 연애를 할 만큼의 재력은 확보할 수 있다. 여성들의 논리를 애써 반박할 시간에 한 푼의 '쩐'이라도 더 확보 하는 게 낫다. 이길 수 없는, 이겨 봤자 훈장도 없는 논쟁에 공들여 봤자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에 일조할 뿐이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그 노력의 한계를 맛보는 씁쓸함이 있긴 하다. 그 부분에 대해선 다음 회에 다시 얘기 하고 싶다.


/사진=Tax Credits in Flickr 


참고로 지난 소개팅 주선에서, 소개녀에 대한 정보 전달은 소개남과는 달리 매우 간단했다. '사진은?'이라는 물음에 전송만 해주면 됐으니까. 여성들 역시 '쩐의 전쟁'을 피해갈 수 없다. 생활고는 둘째 치고, 능력남을 거느리기 위한 자기관리 투자 역시 만만치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돈 없는 여자보다는 돈 없는 남자가 연애할 때 더 불리한 건 별 수 없는 듯하다. 다음의 대화를 소개하며 쩐 없는 남자들의 불만토로를 마친다.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들었던 상황이다.

△능력 있는 여자를 만나지만 본인은 돈 없는 남자가 듣는 말 :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데이트 비용 어떻게 감당해. 기념일에 뭐 해줬냐? 남자가 더 얻어 먹으면 욕먹어 임마. 결혼은? 모아놓은 돈 얼만데. 너희 부모님이 엄청 부자도 아니잖아. 집을 같이 한다고? 걔가 과연 진심으로 찬성할까. 대출? 아서라. 요샌 시작부터 그렇게 많은 빚내는 남자 기피하는 여자집도 많더라.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지만 본인은 돈 없는 여자가 듣는 말 : 이게 이번에 오빠가 사준거야? 기죽지 않으려면 너도 노력해야해. 그래도 뭐 오빠가 능력 있는데 궁상맞게 살진 않겠지. 너희 회사 가까운 곳에 오빠가 집도 사 놨다며. 부럽다. 난 같이 대출받아야 하거든. 심지어 변두리 낡은 아파트. 결혼하면 일 그만둘 거야? 너무 끌려가도 나중에 기 못 펴서 힘들어. 그래도 뭐 괜찮겠지. 오빠가 널 그렇게나 많이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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