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서 옷팔던 중졸 '코오롱'임원되더니..

[피플]최범석 코오롱FnC '헤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  2013.05.31 05:33  |  조회 112279
/사진=구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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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패션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들만 참가할 수 있는 '서울컬렉션'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20대 남성 디자이너가 단독 데뷔무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보다 더 많은 패션 피플들이 몰린 곳은 동대문 시장 출신 최범석 디자이너(37·사진)의 무대였다. 그는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패션왕'의 실존 인물이다.

"정식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주변 사람들 모두가 뜯어 말렸어요. 동대문에서 옷 파는 놈이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냐는 거였죠. 하지만 동대문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지 5년만에 결국 꿈을 이뤘습니다."

최 디자이너의 학력은 '중졸'이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생계에 지쳐있던 부모님은 학업에 흥미를 잃은 아들을 붙잡아 주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결국 중퇴했다. 어려서부터 옷이 좋았던 최 디자이너의 꿈은 원래 옷 가게 사장이 되는거였다. 떡볶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19세에 홍대에 노점을 열고 옷을 팔았지만 두달만에 망했다. 이후 동대문 종합시장의 한 원단 매장에 취직했다. 오전 6시에 출근해 온갖 배달과 심부름을 도맡아 했는데 한달 월급은 고작 40만원이었다. '원단 공부하겠다' 마음먹고 1년여를 버텼지만 수확은 크지 않았다.

그의 2번째 도전은 의정부에 차린 옷가게였다. 자금이 부족해 서울이 아닌 경기 의정부 호프집 골목에 작은 매장을 열었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입해 매장에 진열하는 족족 팔려나갔다. 1년 뒤엔 같은 골목에 있던 식당과 술집이 모두 옷 가게로 전업해 최 디자이너와 똑같은 옷을 떼다가 팔 정도였다.

/사진=구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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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옷은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동대문 상인들에게 포켓이 오른쪽에 있는 옷은 왼쪽에 달아달라고 요구하며 변화를 줬어요. 당시 위기가 디자인을 시작한 계기가 된 셈이죠. 아예 내가 옷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이때 처음했습니다."

당장 의정부 매장을 처분하고 동대문 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매장을 열고 처음 2년은 파리만 날렸다. 최 디자이너는 "손님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입고 싶은 옷만 만든게 문제였다"며 "시행착오 끝에 다양한 디자인을 내놨더니 어느새 동대문 상가에서 매출 1위 매장이 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최 디자이너는 현재 자신의 패션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의 대표이자 코오롱FnC의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 '헤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사),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서울모드패션학교 겸임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에세이집 2권을 직접 쓴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엔 삼성카드의 광고 모델로도 출연했다.

지난 2011년 코오롱에 처음 합류할 때 '대기업에서 제대로 적응하겠냐'는 우려가 많았지만 3년차 임원으로서 성적은 합격점이다. 최 디자이너가 합류한 이후 '헤드' 매장을 찾은 10~20대 젊은 고객들이 급증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그의 대표작인 '히어로' 바람막이 재킷은 두 시즌 연속 생산물량 3만장이 품절되는 대히트를 쳤다. 요가 등 전문 라인을 강조한 여성 제품도 인기가 좋다.

최 디자이너는 "브랜드 리뉴얼 작업이 순조로운 만큼 조만간 10만장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 아이템도 만들어낼 것"이라며 "헤드를 매출 2000억~3000억원대 메가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최 디자이너의 최대 장점은 소비자들이 어떤 옷을 좋아하는 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동대문 시장에서 '생존형' 디자이너로 일하며 소비자 트렌드와 유통 시스템까지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은 제가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옷이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현장을 누비며 100% 체화한 것만큼 강력한 무기가 있을까요. 승부는 화려한 이력서가 아니라 한 우물을 파는 끈기와 노력으로 판가름 나는 겁니다."

디자이너로서 최종 꿈은 '제너럴 아이디어'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2009년 뉴욕컬렉션에 진출한 이후 9회 연속 참가했고 1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 최 디자이너는 "해외 무대는 늘 새롭고 어려운 도전이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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