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하찮은 것이 아닌, 살아 있다는 것의 일부"-메리 퀀트

[스타일 톡<15>] 1960년대 청년 문화의 중심, 미니스커트의 창시자…젊고 신선한 '퀀트 룩'

머니투데이 스타일M 배영윤 기자  |  2015.05.07 09:17  |  조회 10543
마음 속에 새겨놓으면 나의 스타일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다. 과거와 현재의 스타일을 창조한 크리에이터들의 명언들을 소개한다. 머니투데이 패션·뷰티사이트 '스타일M'과 함께 나누는 스타일 톡(TALK)!
/사진=메리 퀀트
/사진=메리 퀀트
"Fashion is not frivolous. It is a part of being alive today" - Mary Quant (1934 ~ )

그녀가 아니었다면 여성들은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할 수 있었을까? 20세기 패션 역사에서 1960년대가 갖는 의미는 크다. 그 중심에 미니스커트의 창시자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있다. 당시 젊은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싶어 했고 메리 퀀트는 그 욕구를 현실로 만들어줬다.

메리 퀀트는 어려서부터 디자인에 대한 본능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6세 무렵에 침대보를 잘라 옷을 만들었고 10대에는 스쿨 드레스를 직접 수선해 짧은 치마로 만들었다.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런던 거리에 '바자(Bazaar)'라는 이름의 부티끄를 열며 본격적으로 그녀의 색깔을 담은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

당대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디자인의 옷과 액세서리가 '바자'를 가득 메웠다. 깔끔하면서 단순한 그녀의 디자인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너도 나도 메리 퀀트의 옷을 입었다. 1960년대 초반 메리 퀀트는 스커트의 길이를 점차 짧게 만들기 시작했고 중반에 들어서면서 스커트의 길이는 허벅지 중간에까지 이르렀다. 그 무렵 런던 거리를 활보하던 여성들은 모두 메리 퀀트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달 사순의 보브컷(☞ 비달 사순 스타일톡 기사 보기)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디자인의 출현이 아닌 혁명에 가까웠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고 그것을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함의적 매개체로 봐도 무방했다.

미니스커트의 창시자 자리를 놓고 메리 퀀트와 함께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가 거론된다. 미니스커트의 인기가 지속되자 앙드레 쿠레주는 미니스커트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본인이며 메리 퀀트는 그것을 상업화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메리 퀀트는 "미니스커트를 만든 것은 나도 쿠레주도 아닌 그것을 입었던 거리의 소녀들"이라고 전했다.

"패션은 하잖은 것이 아닌 살아 있다는 것의 일부"라 했던 메리 퀀트. 항상 젊고 신선했던 컬렉션을 선보였던 그녀의 이상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미니스커트를 두고 여성을 성적 매력의 대상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시선도 있지만 청년 문화의 핵심이자 여성의 활동성을 끌어 올려준 촉매제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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