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터 그라스 서거 1주기…문학이 '부업', 미술이 '본업'

단원미술관, 4월 8일부터 한달간 '양철북' 저자 권터 그라스 특별전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  2016.03.28 15:55  |  조회 3949
권터 그라스. /사진=펠리스 박
권터 그라스. /사진=펠리스 박

"조형예술가로서 나는 전문가이지만, (문학)작가로서 아마추어다." 20세기 마지막 노벨 문학상 수상자 권터 그라스(1927~2015년)가 남긴 말이다. 그라스는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자신의 문학에 대해선 겸양을, 미술 작품들에 대해선 자신감을 내비쳤다.

문학은 '부업', 미술이 '본업'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그는 조각에 심취했다. 자신의 직업을 '조각가'로 즐겨 소개했을 정도다. 이런 그의 서거 1주기를 맞아 그가 말하는 '본업'인 조각‧판화 등 미술 작업의 성과물을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안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단원미술관은 오는 4월 8일부터 5월 8일까지 소설 ‘양철북’의 저자인 그라스의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조각 및 판화작품 100여 점과 포스터, 사진, 유품 등 자료들이 대거 출품된다. 그라스의 삶을 체계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권터 그라스 회고전’이다.

그라스는 1927년 지금은 폴란드에 속하는 단치히(그단스크)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슬라브계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일, 폴란드, 슬라브가 뒤얽힌 그의 혈통은 거칠고 분방해 '야생적'으로까지 일컬어진 그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 배경이 됐다.

독일작가이되 민족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언제나 전 지구적 관점에서 시대적 현안들을 평가하는 세계시민의 태도를 견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터 그라스가 제작한 조각상인 '손 안의 넙치 Ⅱ'. /사진제공=안산문화재단
권터 그라스가 제작한 조각상인 '손 안의 넙치 Ⅱ'. /사진제공=안산문화재단

그는 자신의 소설 작품 표지화보를 제작할 정도로 조형 예술에 관심이 컸던 문학인이었다. 이와 같은 활동은 종종 다른 대문호들이 미술과 맺는 접점과도 비교된다. 19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년)는 만년에 그림을 시작했고, 그라스의 수상 이듬해인 2000년도 수상자 가오싱젠(76)은 중국 수묵화를 그렸다.

그라스는 그러나 보다 특별한 '미술인'으로 남았다. 뒤셀도르프와 베를린 미대에서 조각을 공부한 전문조각가로서 평생 조각과 글쓰기를 병행했다. 그라스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인 '권터 그라스 하우스'에 기증한 미술 작품은 1200여 점에 달했다.

조각 등 전문적인 미술 작가로 비교 대상을 바꿔도 그라스는 특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년), 파블로 피카소(1881~1973년)가 문학으로 인정받은 편에 속한 미술인이라면 그라스는 지속적인 문학 작품을 발표했으며 전 세계 문단의 거목으로 부상한 미술인인 셈이다.

현대 미술의 이런저런 사조에 휩쓸리지 않은 그라스의 미술 작품은 그의 문학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어 '손안의 넙치'는 한 마리의 넙치를 쥔 손과 팔뚝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그라스가 각별한 애정을 갖는 책인 '넙치'를 연상시키는 조각상이다. '넙치'는 넙치 한 마리가 부부의 터무니없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민담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라스의 조각들은 1, 2차 세계대전 기간 유행했던 고전주의의 재해석과 반대로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을 법한 '형상들의 우연적 만남'에 주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 전후 세대 문학을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라스는 지난해 4월 13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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