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은 어떻게 좌절하는가…아서 밀러의 고전 '세일즈맨의 죽음' 막올라

한태숙 연출 "병든 가족 방치하는 모습 그리고 싶었다"…오는 14일 예술의전당서 개막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  2016.04.06 18:15  |  조회 7479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주인공 윌리 로먼(가운데·손진환 분)은 더 잘 살고 싶어 발버둥치다가 현실의 냉혹함에 좌절한다. 사진은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 모습/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주인공 윌리 로먼(가운데·손진환 분)은 더 잘 살고 싶어 발버둥치다가 현실의 냉혹함에 좌절한다. 사진은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 모습/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뉴욕 브루클린의 평범한 소시민 윌리 로먼은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살며 실적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친다. 그에겐 구멍난 스타킹을 꿰매는 아내,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낙제하는 아들들이 있다. 잔고는 매달 바닥을 드러내며 숨통을 조여온다. 집 주위엔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선다.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아서 밀러의 고전 '세일즈맨의 죽음'이 한국식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술의전당은 오는 14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올린다.

한태숙 연출은 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윌리 로먼은 대의를 위해 장엄하게 죽는 영웅이나 악인이 아닌 냉혹한 현실에서 스스로 피해자가 된 비극의 주인공"이라며 "욕망에 의해 분열하는 그가 곧 우리"라고 했다.

한태숙 연출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윌리 로먼의 모습이 곧 우리"라고 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한태숙 연출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윌리 로먼의 모습이 곧 우리"라고 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세일즈맨의 죽음'은 아서 밀러 자신이 대공황을 겪으며 느낀 점을 풀어낸 작품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고립된 개인의 좌절을 그렸다. 1949년 미국 초연 당시 퓰리처상 극본상, 토니상, 뉴욕드라마비평가협회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미국 대공황시기를 배경으로 했지만 시공간을 초월해 한국 관객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윤색했다. 작가 고연옥은 아메리칸드림이나 대공황보다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맹목적인 집착, 비정상적인 가족관계,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 집중했다.

드라마투르그(극작술연구·비평가)로 참여한 강태경 이화여대 교수는 "'가족비극'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의 희생'이란 주제는 식상한 만큼 이번에는 윌리 로먼이란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며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분열된 내면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평범한 2층 주택을 재연한 무대가 눈에 띈다. 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1949년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 집을 재연했다. 극 중 인물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란 배경을 느끼기 어렵다.

박 디자이너는 "미국의 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세일즈맨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급속한 산업개발 시대를 다 겪은 우리 아버지들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윌리 로먼'들은 한국에도 수없이 많다"며 "최대한 생소하지 않게, 오히려 한국적인 정서로 이해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윌리의 내면은 무대 장치를 통해 표현된다. 2막에서는 9m에 육박하는 거대한 무대 구조물이 그의 작고 허름한 집을 좁혀온다. 윌리가 받는 압박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냈다.

원작과 다른 점을 묻자 한태숙 연출은 "아내 린다와 아들이 아버지 윌리의 분열이나 이상행동을 걱정하지만 사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며 "병든 가족을 방치하는 (다른) 가족의 책임을 묻고 싶었다"라고 고백했다. 또 "제 작품이 무겁고 찢어발기듯 힘든 부분 있는데 이번 작품은 위트있고 재밌는 성격이 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장면들이 있다"며 "배우들의 도움으로 위로도 전하는 극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윌리 로먼' 역에는 배우 손진환이 발탁됐다. 배우 예수정이 아내 린다를, 배우 이승주, 박용우가 로먼의 두 아들로 열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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