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대신 뮤지엄

PLAN A+

홍준석 기타(계열사) 기자  |  2017.10.13 10:04  |  조회 2633
뮤즈 대신 뮤지엄. 이런 곰 같은 여우를 봤나.

뮤즈 대신 뮤지엄





적응이란 것은 참으로 무섭다. 제아무리 신선함에 놀란다고 한들 몇 번 반복하고 경험하다 보면 결국 싫증이라는 감정과 함께 식어버린 커피처럼 미지근해진다. 좋게 표현하면 ‘익숙함’이지만 적어도 패션으로 통하는 길에서만큼은 분명 ‘잘못 들어선 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조금 더 새롭고 다양한 마케팅을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가 늘고 있다. 기존의 광고 형식에서 탈피해 전에 볼 수 없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보를 접하는 방식의 루트가 단순해서였는지 비교적 홍보가 쉬웠다. TV, 신문, 매거진이면 충분했고 신제품이 출시되면 사진에 사진만 몇 컷 실어 세상에 소개하면 됐다. 여기에 당대 최고 스타의 윙크 한 방이면 제품의 흥행이 보장되고 머지않아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구 반대편에서 선보인 신상 컬렉션을 엄지손가락 스윙 몇 번만으로 침대 위에서 구경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마저도 공개되는 순간부터 초 단위로 지나버린 시간을 기록하며 금세 과거로 치부한다.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게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니 더 이상 “여기 보세요!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입니다”라는 멘트는 귓등을 스치지도 못한다. 하물며 TV 홈쇼핑조차 서커스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뮤즈 대신 뮤지엄


효과적인 홍보, 마케팅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던 브랜드들은 새로운 플랜을 세웠다. 예술이라는 제약 없는 그릇 안에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브랜드 이름 정도만 살포시 얹혀 거들 뿐이다. 톱스타도, 주력 상품도 없다. 상술을 벗어던지고 예술이라는 폭넓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며 한발 물러서 있다. 그렇게 탄생한 하나의 공간은 뮤지엄과 전시라는 거대한 팔로 대중을 감싸 안는다. 브랜드들이 제품을 하나라도 더 소개하고 판매하려는 전략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시간을 멈출 능력이 없다면 분명 모든 신상품은 과거의 것이 될 것이고 새로운 것에 치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리해진 대중의 머리 위로 예술적인 면모를 선보인 브랜드들은 단연 눈에 띈다. 케어 라벨은 물론 가격 태그 따위도 없다. 지갑이 가볍더라도 그저 보고 즐기면 된다. 얼마 전 루이 비통은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린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를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세심하게 나뉜 여러 공간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앤티크 트렁크부터 신상품, 장인이 작업하는 모습까지 선보였다. 심지어 관람료도 무료였다. 그래서일까.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전시장을 찾았다. 루이 비통이라는 브랜드가 낯설 어린 학생부터 힙스터, 그리고 평소 브랜드에 무관심했던 사람들까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시를 관람했다. 캔버스 백을 앙증맞게 든 10대 소녀의 빛나는 눈에 훗날 루이 비통이 어떤 브랜드로 자리 잡을지는 자명했다. 10월 파리에서는 루이 비통 미술 재단이 ‘MoMa in Paris’라는 주제로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전시한다. 이 행사 또한 패션을 넘어 예술 분야와 소통하고 브랜드가 지닌 의미를 더욱 고급스럽게 포장해줄 것이 분명하다.

뮤즈 대신 뮤지엄


패스트 패션인 SPA 브랜드 또한 전과 다른 행보로 눈길을 끈다. 단순히 빠르게 소비되는 것만을 중요시하지 않고 아트적 면모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인다. 예를 들어, H&M 그룹의 고가 SPA 브랜드 코스는 뉴욕의 건축 디자인팀 스나키텍처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전시를 선보인다. 벌써 세 번째 진행되는 이 전시는 의류가 아닌 건축적 요소로 공간이라는 요소를 채우며 관객과 소통한다. 이러한 마케팅은 SPA 시장에서 높은 퀄리티를 지향한다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부합되면서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 이미지를 생성한다. 어떠한 마케팅보다 쉽게 소비자를 납득시키는 것이다.

뮤즈 대신 뮤지엄



전시를 넘어 어워즈를 진행하거나 예술가를 후원하는 브랜드도 있다. 그중에서도 에르메스와 로에베가 단연 돋보인다. 에르메스는 청담동에 위치한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아틀리에 에르메스’라는 타이틀 아래 여러 예술가를 후원하고 소개하는 아틀리에 형식의 전시를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로에베 역시 브랜드의 철학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장인들이 만드는 작품에 의미를 더하는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를 개최하고 있다. 18세 이상의 전 세계 모든 예술가는 국적에 상관없이 로에베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알리고 인정받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아티스트와의 소통은 장기적으로 볼 때 물질적 마케팅으로는 살 수 없는 타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선사한다. 이러한 전시 마케팅이 최근 들어 등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몸소 체험하고 즐기며 공감하는 것이 각광받는 시대인 만큼, 이러한 방식은 과거보다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어떻든, 잠시 도시의 소음을 떠나 천천히 브랜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

읽어볼 만한 기사

  • image
  • image
  • image
  • image

MOST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