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탐낸 여신, 바다 가운데 산을 세웠네"

[제주의 숨은 비경]

제주=최병일 기자  |  2011.01.20 10:14  |  조회 5187
칼처럼 살갗을 파고들던 바람이 잠시 비수를 내려놓는다. 하늘은 깊어지고, 온풍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좋게 얼굴에 닿는다. '삼한사한(三寒四寒)-삼일은 춥고 사일은 더 춥다'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한파가 전국을 동토로 만들었는데 취재 내려온 날 제주도는 뭍 사람들을 반기듯이 최상의 날씨를 보여준다. 멀리 한라산은 하얀 갓을 쓰고 머쓱한 듯 부동자세를 취하며 달달한 바닷바람에 사뿐거리는 파도조차 정겹게 달려든다. 새털처럼 가벼운 날이다. 한번도 추위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처럼 제주는 청명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고 싶은 제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빛 맑은 날 돌아본 제주의 숨은 비경 속으로 들어가보자.
▲곶자왈지대인 동백동산
▲곶자왈지대인 동백동산

◇생명의 보고 원시림의 천국 동백동산 '곶자왈'
나무와 덩굴식물, 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어수선한 모양을 말하는 제주도 방언이 곶자왈이다. 선흘리에 있는 동백동산은 전형적인 곶자왈이다. 먼 옛날 화산이 분출돼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로 쪼개져 형성된 독특한 지형이 동산에 산재한다.

동산에 들어서면 고사리와 수풀, 가로세로로 길을 막는 덩굴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영화에서 본듯 원시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백동산은 사계절 푸른 상록 활엽수가 자라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 제주도의 원 식생을 추정할 수 있는 곳이기에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이었다. 지질학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희귀하다 하더라도 사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던 곳이다.

원시의 느낌은 경외스럽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어딘가 낯설고 때로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 동백동산은 푸른 날 가족들과 함께 자연이 주는 향긋한 느낌을 누리기에 적당한 곳이다.

가볍게 산보를 나가는 발걸음으로 후박나무며 비쭈기나무며 종가시나무를 구별해보기도 하고 숲을 재빠르게 가로지르는 도룡뇽과 다람쥐를 보며 생명이 주는 환희를 가슴에 품는 것도 좋다. 동산의 길이는 무려 7㎞에 달한다. 용암이 만들어낸 이색적인 풍경과 원시림 속에서 자연이 돼보자.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쇠소깍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쇠소깍

◇바람이 스치는 신비로운 물 웅덩이 '쇠소깍'
바닷물과 담수가 몸을 섞으니 깊은 웅덩이가 생겼다. 서귀포시 하효돈에 있는 쇠소깍은 바다에 연한 독특한 웅덩이다. 쇠는 쇠소깍이 위치한 효돈마을을, 소는 물웅덩이를, 각은 끝을 뜻한다.

긴 웅덩이의 주변은 한겨울임에도 제법 녹음이 남아 있다. 길게 계곡처럼 형상을 이룬 웅덩이 사이로 밑이 투명한 카약을 타고 소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를 보거나 제주도의 전통 배인 테우를 타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사계절 모두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봄이면 인근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귤꽃향이 천지를 메우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가을에는 감귤이 주렁주렁 열리고 겨울 또한 녹음이 남아 있어 따스한 풍광을 연출한다. 소의 양옆에 자리한 다양한 모양의 기암괴석도 볼거리다. 사자모양을 하기도 하고, 거북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소 사이를 헤치고 나가면 마치 비밀의 장소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신비한 전설과 이채로운 풍경의 산방산
▲신비한 전설과 이채로운 풍경의 산방산

◇또 하나의 한라산 눈부신 비경 '산방산'
한라산,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 3대 산으로 불리는 산방산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영산(靈山)이다. 먼 옛날 엄청난 덩치의 설문대 할망(여신)이 제주섬을 지을 때 섬 한가운데 은하수를 만질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을 만들었다.

그런데 산이 너무 높아보였는지 봉우리를 툭 꺾어 바닷가로 던져버렸다. 그 봉우리는 남서쪽 바닷가까지 날아가 산방산이 됐다는 전설이 있는 곳.

또다른 전설은 한라산의 어떤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이 하필이면 옥황상제의 옆구리를 건드렸고 화가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 정상에 있는 암봉을 뽑아 던져버려 암봉이 뽑힌 자리는 지금의 백록담이 됐으며 떨어진 암봉은 산방산이 됐다고 한다. 어찌됐든 산방산은 한라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나보다.

평탄한 지형 위에 우뚝 솟은 타원형의 돔형 화산은 고고하기도 하고 장부 같은 위엄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방산 서남쪽 중턱에 암벽 속으로 깊이 팬 산방굴이 있는데 이 굴에서 바라보는 용머리 해안 풍경과 해넘이 경관은 뛰어난 명소이기도 하다. 용머리 해안은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뛰어드는 자세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옛날 제주도에서 장차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중국에까지 돌았다. 이에 진시황은 풍수사 호종단을 보내 혈을 끊고 오라고 명령했다. 호종단이 용머리 해안을 보니 과연 산방산의 맥이 바다로 뻗어 태평양으로 나가려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용의 꼬리와 잔 등에 해당하는 부분을 칼로 내리치자 검붉은 피가 솟고 신음소리가 울리며 왕후지지의 맥이 끊긴 걸 슬퍼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만큼 해안의 경치는 신비롭다. 해식동굴과 돌게구멍 등의 다양한 절경까지 합쳐지면 가히 제주에서 손가락에 꼽는 비경이 아닐 수 없다.

▲용천동굴의 신비한 내부 풍경
▲용천동굴의 신비한 내부 풍경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용천동굴'
2005년 제주시 월정리에서 전신주 공사를 하던 직원은 다음날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전날 세워둔 전신주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전신주는 하늘로 솟은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땅으로 꺼져버렸다.

기막힌 우연으로 발견한 곳이 바로 용천동굴이다. 웅장한 이 용암동굴은 석회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탄산염 동굴 생성물들이 가득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희귀한 동굴이었다.

동굴 발견 당시 동굴 내부에는 토기와 전복껍질 등 과거 사람이 다녀간 흔적들이 남아 있어 고고학적 가치도 높고, 동굴 끝부분에 있는 맑고 잔잔한 호수는 그야말로 신비하기까지 하다.

세계적인 동굴 전문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암동굴"이라는 찬사를 늘어놓을 만큼 동굴 내부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학술적인 가치가 너무 높아서 일반인들에게는 출입이 허가되지 않은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몰디브·그랜드캐니언과 경쟁하는 '제주'
동북아 유일 '세계 7대 경관' 최종 후보 올라
▲아름다운 풍경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제주를 세계7대자연비경으로 선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산방산 일대
▲아름다운 풍경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제주를 세계7대자연비경으로 선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산방산 일대

스위스의 비영리재단 '뉴세븐원더스'(New7Wonders)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비경 7곳을 선정한다. 지금까지 뽑힌 후보지는 모두 28곳. 후보지의 면면만 보면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으로 제주와 경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쟁쟁한 곳들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비롯해 몰디브섬, 갈라파고스군도, 그랜드캐니언 등이 제주와 마지막 승부를 겨룬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양쯔강과 장자제, 일본의 후지산과 야쿠시마섬, 북한의 백두산과 금강산이 올랐으나 최종 28곳 후보지에서는 모두 탈락하고 동북아에서는 유일하게 제주만 남았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은 후보지에 대한 투표수와 심사위원 견해 등을 종합해 이뤄지며 인터넷과 전화로 일반시민이 참여할 수 있다.

2009년 9월부터 시작된 결선투표는 오는 11월10일까지 진행된다. 전화(001-1588-7715)를 걸어 안내멘트(영어) 후 '삐' 소리가 나면 제주선정코드(7715)를 입력하면 된다. 감사멘트가 나오면 종료되며 한 통화는 140원이다. 한 사람이 몇 번이라도 입력할 수 있다.

인터넷 투표는 뉴세븐원더스 홈페이지(www.new7wonders.com)에서 제주를 포함한 7곳을 선택한 뒤 하단의 '계속'을 클릭, 회원에 가입한 뒤 '등록'을 누르면 된다. 재단에서 보내는 e메일을 확인해야 투표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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