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섶다리 건너면 술 익는 마을 있을까

[머니위크]민병준의 길 따라 멋 따라/ 영월 주천강

민병준 여행작가  |  2011.06.12 11:33  |  조회 6365
영월 주천강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물굽이가 심한 사행천이다. 깊고 깊은 강원도 산골을 산태극 수태극으로 휘돌아가며 빚은 경관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빼어나다. 그리고 거기 '술 익는 마을'엔 섶다리가 전설처럼 걸려 있다.

강원도 영월 주천강은 평창과 횡성 사이에 솟은 태기산(1261m) 남쪽 사면에서 발원한다. 여기서 흘러내린 물은 횡성의 둔내와 안흥을 지나 영월 땅으로 들어서면서 서만이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휘도는 물줄기에 갇힌 땅은 섬 아닌 섬이 되는데, 이런 풍경이 몇개 겹쳐지면 강 안에 섬이 솟고, 섬 안에 강이 흐르게 된다. 서만이강은 '섬 안의 강'이라는 뜻이다.
저 섶다리 건너면 술 익는 마을 있을까


◆옥빛 강물이 오랜 세월 빚은 요선암

법흥천이 서만이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지점 강변에 있는 너럭바위인 요선암은 옥빛 강물이 오랜 세월 흐르면서 빚어놓은 걸작이다. 어떤 것은 한쪽이 움푹 패여 절구와 같고, 복숭아처럼 생겼는가 하면, 용이 승천한 흔적처럼 구불구불 길게 패이기도 했다. 이렇듯 여기저기 움푹움푹 패인 암반 위를 흐르는 물줄기는 들어온 곳도 나가는 곳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미로를 이루었다.

이런 곳에 어찌 정자가 없겠는가. 강변의 요선암을 굽어보는 암벽 꼭대기에 자리한 요선정은 그야말로 하늘나라 선녀가 내려와 노닐 만한 정자다. 비바람에 굽어 자란 노송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서만이강과 요선암 풍광이 일품이다. 정자 옆의 둥근 바위에 도드라지게 새겨진 고려시대 돌부처는 요선암 주인이다. 차가운 돌을 어루만지면 바위에서 살아나온 돌부처가 천년 사연을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들려줄 것만 같다.



요선정을 내려오면 잠시 산중으로 들어가 법흥사를 둘러보자. 서만이강의 큰 지류인 법흥천을 승용차로 10여분 거슬러 오르면 법흥사가 반긴다. 법흥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흥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집이다.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으로 위세를 떨쳤지만, 이후 많은 풍파를 겪은 탓에 규모는 크지 않다. 늙은 거목이 그림자 드리운 징효대사탑비에서 바라보는 극락전이 제법 고풍스럽다. 극락전에서 적멸보궁 오르는 숲길은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해 전나무, 참나무가 잘 어우러져 있어 예쁘다.



◆관찰사 일행을 위해 놓았던 쌍섶다리

요선암 삼거리에서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다 한굽이 돌아서면 주천(酒泉)이 반긴다. '술이 솟는 샘'이라 술꾼들은 환호하겠지만, 아쉽게도 사람 차별하던 샘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샘은 양반이 잔을 들이대면 약주가 나오고, 천민이 내밀면 탁주가 솟았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천민이 커다란 갓을 쓰고 짐짓 양반 흉내를 내면서 잔을 들이댔는데도 탁주가 나오자 홧김에 샘을 부숴 버렸고, 그때부터 주천에선 술 대신 맑은 물만 흘러나왔다고 한다. 고을 이름과 강 이름은 모두 이 샘에서 비롯됐다.

'술 익는 마을' 주천엔 섶다리가 있다. 섶다리는 잡목의 잔가지로 엮어서 만든 전통적인 나무다리를 말한다. 나무는 Y자형의 소나무를 일곱자 간격으로 양쪽에 박고 싸릿가지를 엮은 바자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바닥에 솔가지를 깔고 흙을 다져서 바닥을 만들었다. 또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도끼와 끌로만 기둥과 들보를 맞추었다.

섶다리는 주로 추수가 끝난 늦가을에 설치했다. 섶다리 놓는 작업은 마을의 큰 일이었다. 섶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섶다리 세우는 방법을 알고 있는 노인들과 장정 등 스물댓명이 모여 꼬박 이삼일 정도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놓은 섶다리는 겨울 지나 이듬해 장마가 들기 전까지 사용했다. 그리고 장마 때 섶다리가 떠내려가면 늦가을에 다시 섶다리를 설치했다.



섶다리는 소박하긴 하지만 나무와 흙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다. 세상의 어떤 아름답고 거창한 다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리움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비유처럼 돌로 기교를 부린 홍교가 정자에서 점잖게 마시는 청주라면, 섶다리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들이키는 탁주다.

주천강엔 섶다리를 겹으로 질러놓은 쌍섶다리도 있다. 이 쌍섶다리가 놓인 내력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월로 유배 왔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단종이 복권되자, 조정에서는 원주로 부임하는 강원관찰사에게 단종이 묻힌 장릉에 참배토록 했다.

관찰사 일행은 원주~신림~주천~영월에 이르는 여정 중 이곳에서 섶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런데 당시 관찰사가 타고 가던 가마는 사인교(四人轎)라 외다리로는 건널 수 없었으므로 주민들은 쌍다리를 놓아 주었다. 쌍섶다리를 건너가 장릉 참배를 마친 관찰사는 돌아가는 길에 다리를 놓느라 수고한 주민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후 쌍섶다리를 놓는 일은 단종을 기리는 의식이면서 마을 공동의 축제로 승화되었다. 영월 주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쌍다리 노래'엔 이런 사연이 잘 녹아 있다.

에헤라 쌍다리요 / 에헤라 쌍다리요 / (…) / 장릉 알현 감사행차 / 무사하게 건너도록 / 튼튼하게 정성 들여 / 쌍다리를 놓아주세 / (…) / 임에 다리 두 다리요 / 내 다리도 두 다리니 / 이 아니 쌍다린가 /

한편 이곳 주천리에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판운리마을 앞을 흐르는 평창강에도 섶다리가 놓여 있으므로 들러보자. 판운리 주민들은 매년 11월에 섶다리 축제를 열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지난 4월 단종문화제를 앞두고 영월 동강에 놓은 길이 250m에 이르는 섶다리도 판운리 주민들이 그동안의 축적된 기술로 축조한 것이다.



여행수첩

●교통 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신림 나들목→88번 지방도(영월 방면 12km)→황둔 삼거리(좌회전 4km)→섬안교(주천 방면 9km)→요선암→주천 쌍섶다리 <수도권 기준 2시간~2시간30분 소요>

●숙박 요선암 부근에 무릉가족펜션(033-372-6658), 수주섬모텔(033-372-0026), 유어캐슬(033-372-0345)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법흥사 입구에 솔향기(033-374-0177), 금방아 민박야영장(033-372-7912), 정든오토캠프장(033-372-1388) 등 숙박 시설이 많다.

●별미 주천면 신일리의 주천묵집(033-372-3800)은 인근에서 소문난 맛집이다. 주인 할머니가 직접 빚은 묵으로 상을 차린다. 도토리묵밥과 메밀묵밥이 1인분 6000원. 강원도 전통 별미인 감자옹심이도 1인분 6000원.

●참조 영월군청 1577-0545, 주천면사무소 033-372-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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