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만발한 山上의 花園

민병준의 길 따라 멋 따라/정선 만항재

민병준 여행작가  |  2011.08.28 10:22  |  조회 6100


해발 1330m. 강원도 정선과 영월, 태백을 잇는 만항재의 높이다. 고갯길을 따라 아스팔트로 포장된 414번 지방도로가 나있다. 따라서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승용차로 오를 수 있는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고개로 이름을 올렸다. 고갯마루는 산세도 부드러운 고원지대라 노약자도 힘들이지 않고 야생화 피고 지는 고원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정선 만항재는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석탄을 나르던 고갯길이었다. 더 옛날엔 정선의 고한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태백의 황지를 거쳐 봉화의 춘양까지 가서 소금을 사왔다. 얼마나 험하고 먼 길이었던지 소금 한가마를 지고 고한에 돌아오면 소금이 녹아 반가마도 채 남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승용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갯길

고갯마루 바로 아래 해발 1100~1200m 지점. 움푹 들어간 그곳엔 만항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정도면 '하늘 아래 첫동네'라는 수식을 갖다 붙여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해발 고도다.

예전엔 화전민 두집만 있던 이곳에 50~60여년 전 '쫄딱구뎅'이라 하는 소규모 광산이 들어서면서 광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1962년 근처에 문을 연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는 한때 3000명이 넘는 광부가 매년 156만t의 석탄을 생산했던 굴지의 민영탄광이었으나 석탄산업 사양화로 2001년 문을 닫았다. 정암광업소가 폐광하면서 만항마을 광부들도 많이 빠져나갔다.

현재 남아있는 주민들은 고랭지농사나 약초 채취, 닭백숙 등을 차리는 식당을 열어 생계를 잇고 있다. 또 담벼락에 예쁜 꽃그림을 그리고, 집집마다 화단에 야생화를 심어놓고 주변도 청소해 어느덧 '만항재 야생화마을'로 탈바꿈했다. 그래도 마을 곳곳엔 탄광촌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고한 주민들은 매년 여름이면 만항재에서 '고한 함백산 야생화축제'를 연다. 올해는 7월29일부터 8월7일까지 열렸다. 이미 축제가 끝났다? 아쉬워할 필요 없다.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열리는 야생화축제는 무더위를 피하려는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정한 날짜일 뿐이다. 다른 지방의 축제들은 뒤끝이 썰렁하지만, 이곳 만항재는 여전히 화사하다. 남아 있는 여름 야생화와 피기 시작한 가을 야생화를 모두 만날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생동감 넘친다.

만항재의 주인은 봄여름가을 피고 지는 야생화다. 눈이 녹는 5월부터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9월까지 온갖 야생화가 피고 진다. 물론 세계절이라 해도 겨우 5개월 정도만 들꽃을 볼 수 있다.

이른 봄엔 나도바람꽃, 금강애기나리, 복수초, 노루귀가 눈 속에서 피어난다. 군락 이룬 얼레지도 장관이다. 여름엔 둥근이질풀, 동자꽃, 말나리 등등 수십종이 넘는 야생화가 넘실거린다. 늦여름인 요즘엔 자주색 꽃들이 한데 뭉쳐 있는 자주꽃방망이를 비롯해 샛노란 마타리, 자줏빛 둥근이질풀, 연자주빛 노루오줌과 긴산꼬리풀이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본격 가을에 들어서면 흔히 들국화로 불리는 구절초, 개미취, 쑥부쟁이가 만발하고, 투구꽃, 흰진범, 촛대승마도 앙증맞게 고개를 내민다.

고한 주민들은 몇해 전부터 만항재 일대에 산책로를 꾸미고 있다. 만항마을 주변은 '야생화 공원', 만항재 일대는 '산상의 화원'과 '하늘숲 정원', 함백산 가는 길목은 '바람길 정원'로 나누었다. 고민할 필요 없다. 어느 곳으로 가든지 가녀린 꽃송이들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며 반겨줄 것이다. 만항재 주변을 산책하며 둘러보는 데 1~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야생화 만발한 山上의 花園


함백산 정상까지도 찻길이 뚫려 있어

만항재 야생화 산책을 마치고 훌쩍 떠나지 말자. 바로 옆에 부드럽게 솟은 함백산도 올라보자.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함백산은 강원 남부의 최고봉. 오늘날의 측량 기술로 보면 함백산은 그 곁에 있는 태백산(1567m)보다 더 높지만, 예전엔 태백산과 함백산은 하나의 산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함백(咸白), 태백(太白)은 모두 우리말의 '크게 밝다'는 뜻이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은대봉(1442m), 금대봉(1418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해발 1400m에서 1500m를 넘나드는 봉우리가 줄을 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금이다. 이 정도면 지리산이나 덕유산, 설악산 등의 산군에 견주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 높이 아닌가.

그럼에도 야생화 뒤덮인 능선길은 한없이 부드럽다. 고산준령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 분수령은 그야말로 웅장함과 장쾌함 그 자체다. 함백산 정상에 오르면 동으로 태백 시내가, 서쪽으로는 정선이 한눈에 조망되고, 은대봉을 거쳐 두문동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분수령도 손금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 왕복 3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져 있어 승용차로 오를 수도 있다.

만항재 아래 정암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추앙받는 절집이다. 신라의 자장 스님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신 뒤 입적할 때까지 머물렀다. 불교도들에게 이름난 성지로서 전국의 사부대중은 물론이요, 인근 지역을 지나던 관광객들의 발길도 붙잡는다. 탄광 지역이었건만 고산 특유의 짙은 내음과 청정함이 배어 있고 경내를 흐르는 계곡엔 1급수에서만 사는 열목어가 산다.

사리는 적멸보궁 뒤편의 절벽 위에 세워진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에 봉안돼 있다. 적멸보궁을 들렀다 정감 있는 산길을 잠시 오르면 석회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상륜부에 청동장식을 얹은 수마노탑이 반긴다. 이쪽에선 보기 드문 7층 모전석탑이다. 여기에선 정암사의 아늑한 정경 너머로 대한민국 최고의 탄광도시였던 고한이 멀리 내려다 보인다.



여행수첩

●교통 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영월·제천 방면)→제천→38번 국도→영월→상갈래 삼거리(상동·정암사 방면 우회전)→정암사→만항마을→만항재 <수도권 기준 3시간 소요>

●숙박 정선 고한에 하이원호텔(033-590-7700), 메이힐스리조트(033-590-1000), 강원관광펜션(033-592-5912), 태백 시내에 호텔 메르디앙(033-553-1266), 이화모텔(033-552-2116) 등 숙박시설이 많다.

●별미 만항재 아래의 만항마을엔 함백산토종닭집(033-591-5364), 함백산식당(033-591-3136), 만항산골닭집(033-591-5007), 밥상머리(033-591-2030) 등의 식당이 있다. 대부분 주변 산기슭에서 캔 온갖 약재를 넣어 푹 삶은 토종닭백숙과 오리백숙을 차린다.

●참조 정선군청 033-562-3911, 고한읍사무소 033-59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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