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史 거장들, 그 당시 '오늘' 뭘 그렸을까?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60주년 기념 '어제와 오늘'展··· 7월 26일까지 덕수궁관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4.04.18 14:00  |  조회 17705
김인승, 청(Listening), 1966, 161.8×115.3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인승, 청(Listening), 1966, 161.8×115.3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구적인 외모의 세련된 여인이 단아하게 앉아있다. 주변에 백자와 축음기, 레코드 등이 있는 걸로 보아 부유한 가정의 여식으로 보인다. '당시 이화여대에서 가장 예쁜 학생을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김인승 화백(1911~2001)의 1966년작 '청'(Listening)이다. 작품 속 주인공의 미모 앞에 관람객들의 발걸음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장미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겨 '장미화가'라는 별명도 얻었던 김 화백은 정확한 관찰과 묘사가 특징인 인물화로도 유명하다. 옷의 무늬하며 눈썹이나 눈빛의 정교함을 보고 있자니 여인의 성격마저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작품이 눈에 확 들어오고 나면, 전시장에 걸린 다른 인물화에 계속 눈길이 간다.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은 한복을 입은 여인은 화선지에 먹과 물감으로 채색해 현대적이면서도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이유태 화백(1916~1999)의 '화음'(1944년)인데, 제목처럼 묘한 어울림이 전해진다.

박영선 화백(1910~1994)의 '햇살이 비치는 방'은 이국적이다. 앉아있는 세 여인들의 모습과 바닥, 배경처리에서 어딘지 모르게 큐비즘적인 면분할 방식이 엿보여 피카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종무 화백(1916~2003)의 '자화상'은 평범하면서도 깡마른 작가 체구와 표정에서 내면의 선비 같은 고집이 느껴지고 그림의 구도를 무척 신경 썼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왼쪽) 장우성, 승무, 1937, 198×161cm, 비단에 먹, 채색<br />
(가운데) 박노수, 선소운(仙簫韻), 1955, 187×158cm, 화선지에 담채<br />
(오른쪽) 이종무, 자화상, 1958, 162.1×130.1cm, 캔버스에 유채 /세 작품 모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br />
(왼쪽) 장우성, 승무, 1937, 198×161cm, 비단에 먹, 채색
(가운데) 박노수, 선소운(仙簫韻), 1955, 187×158cm, 화선지에 담채
(오른쪽) 이종무, 자화상, 1958, 162.1×130.1cm, 캔버스에 유채 /세 작품 모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들은 모두 고희동, 김환기, 박노수, 천경자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주름잡았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한국현대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하며 맥을 이어온 이들, 대한민국예술원(이하 예술원) 회원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예술원 개원 6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7일 개막한 '어제와 오늘' 전시다. 예술원 미술분과 작고회원 35명과 현 회원 22명의 작품 79점을 소개한다. 작고한 회원들의 작품은 대부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다. 현재 활동하는 예술원 회원 중에서는 천경자, 백문기, 문학진, 전뢰진, 오승우, 이광노, 윤영자, 민경갑, 최종태, 윤명로, 서세옥, 김흥수, 엄태정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90세가 넘은 작가만 7명이다.

예술원은 한국 예술의 향상과 발전을 도모하고 예술가를 우대하기 위해 설치한 대한민국 예술가들의 대표기관이다. 1952년 문화보호법(이후 대한민국예술원법으로 개칭)에 근거해 1954년 문을 연 이후, 예술 진흥에 관한 자문과 건의를 비롯해 예술 창작 활동 지원, 국내외 예술 교류 및 예술 행사 개최,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여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무용 등 4개 분과로 구성됐으며, 100명 정원에 현재 회원은 88명이다.

서세옥, 사람들, 1996, 257×163cm, 한지에 수묵, 개인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서세옥, 사람들, 1996, 257×163cm, 한지에 수묵, 개인 소장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는 반가운 이름, 익숙한 작품이 눈에 띈다. 김환기의 추상 '운월'(1963)을 비롯해 먹을 듬뿍 묻힌 굵은 붓으로 힘차게 그렸을 서세옥의 '사람들'(1996), 천경자의 '그레나다의 도서관장'(1993) 등을 볼 수 있다. 허백련의 '유산해조도', 허건의 '목포다도일우' 등 산수화와 조수호 이수덕 배길기의 서예 작품도 나왔다.

이번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를 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전시실의 작품 배치와 구성을 하나의 이야기와 시대로 느껴본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한국미술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한쪽 전시장 가운데는 한국근대조각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윤효중 작가의 '현명'이 눈에 들어온다. 한복 입은 여인이 활을 쏘는 모습을 조각한 이 목조각품은 한때는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나 작가가 친일미술에 개입했다는 이유 등으로 뛰어난 조형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가치와 의미는 점점 작아졌다. 이러한 사연조차도 한국 근현대미술의 역사라는 점과 함께 예술가의 시대정신, 문제의식, 책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최근 첨단 기술과 화려한 기교를 이용한 각종 설치작품이나 대형 미술작품에 비하면 한편으로 고루하고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들의 힘겨운 작업은 분명 한국현대미술의 든든한 밑바탕이 됐다.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한자리에서 만나보게 될 이번 전시는 오는 7월 26일까지 열리며, 관람은 무료(덕수궁입장료 1000원 별도)다.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60년 기념전시 &lt;어제와 오늘&gt;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앞쪽의 활을 쏘는 여인 조각작품은 윤효중 작가의 '현명'(1942, 50×110×165cm, 나무) /사진=이언주 기자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60년 기념전시 <어제와 오늘>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앞쪽의 활을 쏘는 여인 조각작품은 윤효중 작가의 '현명'(1942, 50×110×165cm, 나무) /사진=이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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