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만족감 최고…'맥주계의 이케아' 크래프트 맥주

[김성찬의 알리오올리오⑦]골라먹는 재미가 있다…오늘도 새로운 맥주를 찾아서

머니투데이 스타일M 김성찬 칼럼니스트  |  2014.07.16 09:38  |  조회 6599
맛집이 범람하고 갖가지 음식사진이 올라오는 시대다. 혼자 알기 아까운 맛집과 맛있는 음식 있으면 '알리오', 사진도 찍어 '올리오'.
귀찮지만 만족감 최고…'맥주계의 이케아' 크래프트 맥주

"한국의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자 다니엘 튜더가 지난 2012년말 보도한 내용이다. 이 보도는 국내 소비자들이 한국 맥주에 보내던 의심의 눈초리를 정당화하는 기폭제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잦은 해외여행으로 현지 맥주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수입 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안목이 높아진 터였다. 일부 소비자들은 국내 주요 맥주회사들이 독과점의 지위를 이용하여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내 맥주 업체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비자들은 국산 맥주가 밍밍하다고 하지만 그건 소비자 입맛에 맞췄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맥아 함량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는 그 함량이 70~100%에 이른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순 없어 보인다. 국산 맥주의 품질이 어떤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똑같은 맥주만 진열돼 있는 광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견고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국내 맥주 업체들이 기존 주장을 관철하거나 수입 맥주를 견제하는 데서 벗어나 다양해진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이다. 작년부터 국내 맥주의 대다수를 점하는 하면발효의 라거 맥주가 아닌 상면발효 맥주인 에일 상품을 내놨고 적잖은 호평을 받고 있다. 국내 맥주 업체의 움직임 이전에는 소비자 스스로가 취향에 맞는 맥주를 찾는 행보가 있었다. 크래프트 맥주가 맥주 논란의 최전선에 들어선 것도 그 즈음이다.

/사진=김성찬
/사진=김성찬
크래프트 맥주란 소규모 양조장에서 나름의 제조법으로 만든 맥주를 뜻한다. 만드는 곳마다 개성 있는 맛을 뽐내 맥주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데 요즘엔 색다른 맥주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의 메카는 이태원이다. 비슷한 국내 맥주 맛에 실망한 외국인들이 경영하기 시작한 가게가 많다. 이태원 경리단길의 '맥파이 브루잉'은 크래프트 맥주점의 시초라 할 만하다. 여기서는 '페일 에일'과 '포터' 등을 내놓는데 '페일 에일'의 인기가 높다. 안주로는 5종류의 피자가 있다.

맥파이 브루잉 바로 옆에는 앞서 말한 다니엘 튜더가 지인과 함께 차린 '더 부스'가 있다. 맥주 장인으로 유명한 미군 군무원 빌 밀러의 제조법에 따른 '빌스 페일 에일'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 맥주를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고 평한 장본인의 가게인 만큼 맥주 맛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안주로는 큼지막한 조각 피자가 있는데 크기가 상당하니 한 조각 정도만 주문해도 될 듯싶다. 가게는 평상 같은 나무 탁자 주위에 플라스틱 의자를 흩어놓았는데 야외까지 침범해 맥주를 즐기며 시끌벅적한 게 마치 현대식 주막 같은 느낌이다.

맥파이 브루잉과 더 부스에 조금 못 미친 곳에는 '크래프트 웍스'가 있다. 이곳의 맥주는 한국 지명을 딴 것으로 유명하다. '금강산 다크 에일', '북한산 페일 에일', '지리산 IPA(인디아 페일 에일)' 등이 그러하다. 이중 지리산 IPA를 많이 찾는 것 같다. 또 판매 중인 맥주를 골라 마셔볼 수 있는 샘플러를 제공해 초심자가 입맛에 맞는 맥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이태원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계'를 포함해 크래프트 맥주를 취급하는 가게가 많다. 여유를 가지고 이곳저곳 다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진=김성찬
/사진=김성찬
이처럼 직접 만든 맥주를 취급하는 가게가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지고 취향이 다양하더라도 크래프트 맥주 전문점을 찾아 발품을 파는 건 맥주 애호가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라거, 에일, 램빅 등 맥주를 만드는 방식이나 제조업체에 따라 무분별할 정도로 가지를 쳐가며 탄생한 다양한 맥주 가운데 취향에 맞는 맥주를 찾는 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럼에도 크래프트 맥주와 같이 색다른 맥주를 찾고자 하는 열망은 '이케아 효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이케아 효과'란 자기가 직접 관여한 일이나 사물에 더 큰 애착을 갖는 심리적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케아 가구는 가격이 싼 반면에 소비자가 매장에서 집까지 직접 운송하고, 조립까지 해야 함에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기가 가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완제품을 구매했을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노린 마케팅 사례다. 크래프트 맥주의 인기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비록 직접 맥주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대량생산된 맥주부터 홈브루잉 맥주까지 수많은 맥주 중에서 취향에 맞는 맥주를 선별하고 즐기는 과정은 직접 맥주를 만드는 일에 버금가는 만족감을 줄 테다.

흔히 내 인생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쉽게 푸념하곤 한다. 요즘과 같이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살얼음판 같은 경쟁 사회에는 더욱 그렇다. 하다못해 맥주라도 내 맘대로 골라 먹음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우선 어떤 맥주들이 있는지 검색부터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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