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복날 삼계탕의 향연,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만들자

[김성찬의 알리오올리오⑧]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대표 보양식 '삼계탕'

머니투데이 스타일M 김성찬 칼럼니스트  |  2014.07.23 10:24  |  조회 5747
맛집이 범람하고 갖가지 음식사진이 올라오는 시대다. 혼자 알기 아까운 맛집과 맛있는 음식 있으면 '알리오', 사진도 찍어 '올리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평소 그리 붐비지 않던 삼계탕집에 웬일로 사람들이 길게 서 있나 했더니 초복이었다. 밤에도 더운 열대야에 시달리며 여름을 실감하고 있었지만 초복의 풍경을 보니 진짜 여름이다 싶다.

삼계탕 집 앞에 줄 선 사람들의 모습은 놀이공원을 연상케 했다. 놀이기구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 섞인 표정이 삼계탕을 먹으러 온 사람들의 얼굴에 그대로 포개진다.

이상한 일이긴 하다. 날씨는 한 달 전부터 더웠고, 삼계탕집은 늘 그곳에 있었으니 꼭 복날이 아니라 바로 전날이나 다음날 삼계탕을 먹어도 될 텐데 말이다. 원기 회복이라는 효능은 언제라도 똑같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이 꼭 복날에 삼계탕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조들이 초복에 삼계탕을 먹었던 이유는 여름에 땀을 많이 흘려 차가워지고 기운이 허해진 몸에 원기를 보충해주고 장을 따듯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란다. 사실 이런 이유라면 대체 음식은 많다. 실제로 장어, 민어탕, 영양탕 등 갖가지 보신 음식들이 보양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여름 보양식은 단연코 삼계탕이다. 예전에는 개고기를 더 많이 먹었다는데, 요즘에는 애견인이 늘고 '강아지는 우리의 친구'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개고기보다는 삼계탕을 많이 먹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름 복날 삼계탕의 향연,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만들자

문득 축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긴 줄을 목격한 곳은 서울시청 근처 유명한 삼계탕집인데 그 주변은 나를 포함한 직장인들의 터전이다. 음식점이 아무리 많아봤자 365일 매 점심 끼니를 때우는 숫자만큼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니 식단은 거기서 거기다. 하물며 수십년씩 일하면 주변 가게의 음식들은 입에 물릴 대로 물린다. 그런 점에서 날짜에 맞춰 삼계탕을 먹는 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을 분출하려는 심리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11월11일 '빼빼로데이' 말이다. 1이라는 숫자가 빼빼로를 닮았고 그것이 네 개 있다는 것 외에 빼빼로 데이에 빼빼로를 먹어야할 이유는 없다. 다분히 제조사가 만들어 낸 축제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사먹는 사람들을 상업주의의 노예라며 비웃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크게 공감했던 적이 있었다. 빼빼로데이가 상업적인 기념일인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매일 똑같은 365일 중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3월3일 '삼겹살데이'에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초복에 삼계탕을 먹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치러지던 때, 한 경제지 논설위원은 서울시청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를 보곤 우리나라 국민에 점재된 파시즘을 엿봤다고 했다. 축구 응원하는 데 전체주의라니. 꿈보다 해몽이다. 변변한 축제 하나 없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진 열정적인 축제의 모습이 그의 눈에는 불온해 보였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초복 삼계탕 문화를 축제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하여 복날축제. 혹은 삼계탕 축제. 시끌벅적한 스페인 토마토축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소리 없는 나팔소리가 들리는 침묵의 축제. 독일의 옥토버 페스트에 맞먹는, 건강에도 좋다는 한국의 삼계탕 축제. 외국에 소개하는 우리나라 대표 음식인 떡볶이보다 훨씬 와 닿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초복에 삼계탕을 먹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복날은 세 번이라는 것. 사람이 너무 많아 이번 삼계탕 축제에 참가하지 못했는가. 아쉬워하지 마시라. 아직 두 번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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