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떠난다면…"여기 돼지고기 먹어봤어?"

[김성찬의 알리오올리오⑩]제주 먹을거리 기행…고기국수와 돔베고기, 흑돼지 삼겹살

머니투데이 스타일M 김성찬 칼럼니스트  |  2014.08.07 09:57  |  조회 12648
맛집이 범람하고 갖가지 음식사진이 올라오는 시대다. 혼자 알기 아까운 맛집과 맛있는 음식 있으면 '알리오', 사진도 찍어 '올리오'.
/사진=김성찬
/사진=김성찬
제주도는 3년 전에 처음 가봤다.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 계획을 세워봤다. 살펴보니 한두번 방문한다고 제주도를 오롯이 다 즐길 수는 없겠다 싶었다. 허리가 좋지 않아 이리저리 발품을 팔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먹을거리에 집중했다.

제주도는 수려한 자연경관만큼이나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해산물, 흑돼지, 햄버거, 말고기 등 위시리스트는 금세 꽉 찼고 첫 방문으로 모든 걸 맛볼 순 없어 보였다. 제주도를 소개하는 여행 책자 몇 권을 뒤적이면서 우선순위를 따져 몇 가지를 추려냈다. 흑돼지 삼겹살, 고기국수, 돔베고기, 돼지두루치기가 그것이다.

/사진=김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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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고기국수를 먹어보기로 했다. 여행 책자가 추천하는 유명한 가게 세 곳 중 한 곳을 찾아갔다. 정말로 유명한지 가게 앞에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제주도까지 여행 온 만큼 꾹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30분쯤 기다렸을까? 마침내 고기국수를 맛보게 됐다. 무엇보다 푸짐한 인심에 만족했다. 동행한 지인과 각자 한 그릇씩 주문했는데 한 그릇만 시켜 나눠 먹어도 충분했을 듯싶다. 맛집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것에 비해 정작 맛이 없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대만족이었다. 평소 면류를 즐기는데다 고기까지 얹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다음 날엔 돔베고기를 찾아 떠났다. 숙소가 공항 근처에 있던 터라 제주시내에 있는 가게를 선택했다. 이름이 알려진 가게라 쉽게 찾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택시에서 내리고도 스마트폰 지도를 길잡이 삼아 한참을 들어갔다. '돔베'는 제주말로서 도마라는 뜻이다. 도마 위에 돼지고기 수육이 올라온다. 수육이라고 하면 그리 희귀한 게 아니라서 새로울 것도 없지만 지역색 짙은 작명 탓인지 완전히 다른 음식 같았다. 맛도 좋았다는 건 두 말할 나위 없겠다. 얼마나 인상 깊었던지 홍대 앞 막걸리 집 메뉴판에서 돔베고기를 발견했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사진=김성찬
/사진=김성찬
고기국수와 돔베고기를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 끼니마다 흑돼지 삼겹살을 먹었다. 어떻게 보면 흑돼지 삼겹살에 대한 집착은 순수함에 대한 열정과도 같다. 영화로 치면 무성영화요, 음악이면 클래식이다. 라면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는 라면에 김치나 계란 등 라면 봉지 안에 들어있는 것 말고 다른 걸 넣어서 먹는 건 라면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본다는데, 그런 점에서 국수에 돼지고기를 빠뜨리고 양념을 버무린 수육을 먹는다는 건 흑돼지 삼겹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사정상 계획한 돼지두루치기는 맛보지 못했지만 흑돼지 삼겹살을 더 먹을 수 있었기에 전혀 아쉽지 않았다. 맛이 어땠냐고 묻는 건 우문이 아닐까.

영화 '쿵푸팬더'에서 팬더는 아버지가 만드는 국수의 레시피를 알고 싶어 한다. 이렇게 맛있는 국수엔 분명히 특별한 레시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팬더의 아버지는 영화 말미 그 비밀을 팬더에게 말해준다. 레시피 따위는 없으며 모든 것은 네 믿음에 달렸다고. 네가 스스로를 드래곤 워리어라고 믿으면 바로 드래곤 워리어라는 혜안이다. 알듯 말듯 한 말이지만 내 제주도 돼지고기 순례도 비슷한 듯하다. 고기국수나 돔베고기, 흑돼지는 서울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제주도라서 특별했다면 아름다운 제주도 풍경에 대한 믿음과 동행한 사람에 대한 믿음, 무엇보다 흑돼지 삼겹살에 대한 나의 절절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제주도로 떠난다면…"여기 돼지고기 먹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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