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당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영화 '비긴 어게인'
[이현지의 컬티즘⑫] 비참한 순간에 우릴 구원하는 건 언어가 아닌 노래일지도 모른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4.08.25 09:05 |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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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비긴 어게인' 스틸컷/사진=판씨네마(주) |
사랑 뿐인가. 처음 회사에 들어가 업무적인 일 외에 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매일 머라이어 캐리의 'Can't take that away'를 들었다. "They can say anything they want to say. Try to bring me down but I will not allow anyone to succeed hanging cloud over me.(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말도 할 수 있어요. 나를 좌절하게 하려고 하죠.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낙담하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라고 이어지는 노래가사를 곱씹으며 그 시절을 견뎠다.
영화 '비긴 어게인' 스틸컷/사진=판씨네마(주) |
영화 '비긴 어게인'은 그렇게 음악을 통해 사랑하고, 소통하고, 치유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원스'의 감독 존 카니가 메가폰을 잡았고,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게다가 마룬 파이브의 애덤 리바인이 조연으로 나와 첫 연기를 선보인다. 장르 자체가 이미 흥행성을 담보하고 있는데 거기에 감독, 배우들까지 기대감을 더 해주는 터라 사실 흥행 안 되기가 더 힘든 영화다. 실제로 개봉 12일째 3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고 한다.
감독 존 카니가 스스로 말했듯이 '비긴 어게인'은 영화 '원스'의 할리우드 버전이다. 아픔이 있는 두 주인공이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 함께 음악을 완성시키며 서로를 치유하는 기본적인 틀은 '원스'와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간단하게 해결이 불가능한 복잡 미묘한 문제들이 음악을 통해 모두 해결되는 식의 스토리 전개는 오히려 '원스'보다는 '어거스트 러쉬'를 떠올리게 한다. '어거스트 러쉬'에서 음악을 통해 11년간이나 헤어져있던 세 가족이 갑작스럽게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감동스럽지만 일견 억지스러운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전개와 결말 말이다.
영화 '비긴 어게인' 스틸컷/사진=판씨네마(주) |
다만 음악의 힘을 믿고 음악에 의해 구원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비긴 어게인'의 원제인 'Can a song save your life?'라는 제목이 이 영화에 비해서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자면 각 등장인물들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조금 더 섬세하게 다뤄졌으면 어땠을까. 주인공들이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음악을 녹음하는 감동적인 모습만이 부각되는 나머지 놓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구원받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은 아쉽다.
오래 전에 봤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주인공이 간수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틀었던 순간이다. 교도소 전역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이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자 죄수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나는 지금도 그때 두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라고 이야기한다. 음악은 그런 것이다. 가장 비참한 순간에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언어가 아닌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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