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 공세에 정통 캐주얼 브랜드도 '흔들', 돌파구 없나?

남성 'TD 캐주얼' 백화점 매출, 두자릿수 감소 뚜렷…가두점 늘리고 온라인 강화 나서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  2014.11.04 06:30  |  조회 9036
#지난 1일 서울 명동8길 인근 빈폴종합관 매장. 손님맞이에 가장 바쁠 주말 오후 3시인데도 매장은 한산한 모습이 역력했다. 1층 여성복, 2층 남성복, 3층 아웃도어 식으로 구분된 매장에는 각 층마다 4~5명의 손님들만 보일 뿐이다. 그나마 중국인 관광객 몇 명이 옷을 적극 입어볼 뿐이었다.

반면 비슷한 시간 명동 초입의 제조·유통 일괄형 의류(SPA) 브랜드 '자라' 눈스퀘어 매장. 한국인 고객은 물론 중국인 관광객들까지 가세해 매장 곳곳이 북적거렸다. 이 매장에서 만난 김주현(35·가명)씨는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옷들이 많고 가격도 저렴해 시내 나올 일이 있으면 부담없이 찾는다"며 "최근에는 디자인도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토종 패션업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트래디셔널(정통) 캐주얼'(TD캐주얼)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폭넓은 고객 연령대을 확보한데다 디자인도 고급스러워 지난 10년간 '패션 불황'을 비껴간 업종이 바로 TD캐주얼이었다. 하지만 최근 해외 SPA(제조·유통 일괄화 의류) 브랜드의 공세에 밀리고, TD캐주얼 업체끼리 경쟁도 치열해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빈폴(제일모직)과 폴로, 헤지스(LF), 타미힐피거(SK네트웍스), 라코스테(동일드방레) 등 TD캐주얼 브랜드의 올해 롯데백화점 매출(TD 캐주얼 남성복 기준)은 전년대비 두 자릿수 감소가 대부분이다. 올해 1월~10월19일 판매액 기준으로 폴로는 지난해보다 14%나 매출이 줄었고, 라코스테는 12% 감소를 보였다. 타미힐피거와 헤지스, 빈폴 등 간판 캐주얼 브랜드도 각각 10%, 8%, 4% 마이너스 신장률로 나타났다.

헤지스와 라코스테는 가을 옷 판매가 본격화되는 10월 매출마저도 전년대비 감소세다. 빈폴도 10월 매출이 지난해보다 크게 나아질 조짐은 없어 보인다. 다른 백화점의 TD캐주얼 매출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TD캐주얼 판매는 전년대비 감소세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성복과 아동복 등도 지난해 매출에서 크게 늘지 못하고 있다. TD캐주얼 매출은 60% 이상이 백화점을 통해 이뤄지고 있어 이 같은 백화점 부진은 곧바로 모기업의 매출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머지 40% 매출을 차지하는 가두점들도 전반적인 실적이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올해 TD캐주얼 판매실적이 최근 수년간 가장 나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며 "주요 패션업체 매출에서 TD캐주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해당업체의 매출 타격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저가를 앞세운 SPA 브랜드가 대형 가두매장을 중심으로 소비자들과 접점을 넓히는 사이 TD캐주얼은 백화점 중심의 판매에 안주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백화점 입점에만 매달리면 브랜드 이미지는 높일 수 있지만 그만큼 올해 같은 소비 불황에는 타격이 클 수 있다.

특히 TD캐주얼 '불패 신화'의 핵심에 있던 '피케셔츠(캐주얼풍이지만 정장 연출도 가능한 셔츠)' 매출마저 SPA 브랜드에 밀리는 상황이어서 눈길을 끈다. 백화점에서 10만원을 훌쩍 넘는 TD캐주얼 피케셔츠는 자라와 H&M 같은 SPA 가두매장에서는 5만원대에 구입 가능하다.

백화점 중심의 영업전략이 근본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올 들어 백화점들이 불황 타개를 위해 연중 세일을 하다 보니 TD캐주얼의 브랜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TD 캐주얼 브랜드들이 백화점 연중 세일과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 사이에서 브랜드 위상을 다시 고민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플래그십스토어 같은 가두매장 확대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헤지스 관계자는 "매장 수익성이나 브랜드 인지도 제고 측면에서 가두매장이 백화점매장보다 나은 측면도 있다"며 "가두매장 늘리기에 좀 더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정투자가 거의 없는 온라인 채널 강화에 나선 브랜드도 있다. 타미힐피거는 지난 9월부터 'SK패션몰'을 통해 본격 판매에 나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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