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에 대한 비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이현지의 컬티즘㉓]연극 '내안의 김수영을 찾아서', 민감한 사안을 웃음 포인트로 승화한 진정한 풍자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4.11.24 10:19  |  조회 7464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사진=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연극을 보지 않은지 몇 달이 지났다. 문화 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문화적 혜택을 못 누린다고들 하지만 사무실 바로 옆인 남산예술센터에서 매일 이어지는 공연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있다는 것 조금은 반성할만한 일이다. 그래서 보기로 했다. 남산예술센터의 2014년 마지막 작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말이다.

작은 일에는 크게 분노하고, 큰 일은 침묵하는 치졸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극이 아닐까 생각했던 첫 예상과 달리 연극은 파란만장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면 살았던 시인 김수영의 족적을 훑어가는 내용이었다. 2013년 '알리바이 연대기'라는 작품으로 동아연극상(작품상, 희곡상, 연기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연기상, 무대미술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연극베스트3'와 월간 한국연극의 '공연베스트7'에 선정되면서 그야말로 대한민국 연극계를 강타했던 김재엽 연출 작품이다.

김수영이라는 다소 대중적이지 않은 인물, 또한 그의 '삶과 시'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 연극이 풀어가는 방식은 매우 신선하다. 연극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승-전-결의 완성된 플롯과 줄거리 대신에 연출 김재엽이 김수영에 대한 연극을 하기 위해 배우를 섭외하고 대본을 써 나가는 내용부터가 무대에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김수영이 살았던 시대와 그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그의 모습이 프리즘처럼 비춰진다.

/사진=남산예술센터 페이스북
/사진=남산예술센터 페이스북
이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배우 강신일이다. 그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뤄진 이 연극에서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시인 김수영을 환기시킨다. 현실에서는 김재엽 연출과 함께 김수영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는 김수영을 직접 만나기도 한다. 인혁당 사건을 그린 연극 '4월 9일'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되는 의사의 고난이 담긴 '한씨 연대기', 분단과 군부정권의 희생양을 그린 영화 '실미도'에 실제 출연했던 강신일이 작품을 회고하며 그 속의 수많은 김수영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공연 도중 연출이 관객의 작품으로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강신일이 인민군 배역을 맡은 배우를 향해 "너 연기 진짜 열심히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끌려가는 건 아닌 것 같아"라고 하거나 김재엽 연출가를 연기 중인 배우 정원조를 향해 "너 대본 이런 식으로 쓸래?"라고 외치는 식이다. 김재엽 연출이 '연극이 아닌 연극'을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한 다소 강한 정치색이나 무거워지는 주제를 밝은 분위기로 끌어올리고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장치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극은 과거의 사건들이 여전히 현재에도 모습만 바꾸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던 정부의 말은 세월호 안내방송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이승만 대통령의 망명은 텔레그램으로 연결된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김수영의 목소리는 채널A와 TV조선에 막히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교학사 국사 교과서를 진열한 채 "구국의 치킨과 피자"를 찾는다. 조금은 위험하다 싶을 정도의 민감한 사안들이 웃음 포인트로 이어지는 진정한 풍자가 돋보인다.

/사진=남산예술센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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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품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시인 김수영과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아가는 여정이 너무 마치 꿰지 않은 구슬들처럼 흩뿌려져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늘 혼돈과 혼란이다.

‘A’에 대한 공식과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그를 찾아가는 과정은 여러 갈래의 길에 수많은 발자국을 찍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복잡한 시대를 살아온 한 개인과 그 개인에 투영해 본 나 자신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연출의 의도가 그러한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연극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더 정제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결국 연출이 말하고자 했던 김수영은 시대를 온몸으로 살았던 시인이다. 시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탐구했고,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았으며, 늘 '온전한 나'로 살고 싶어했던 시인 김수영. 그리고 그 시인을 통해 연출이 말하고자 했던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아서'라는 부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각성의 촉구다. 시대의 부조리에 더 이상 분노하지 않고,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려고 하지 않고, 라캉의 표현을 빌자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 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온 몸으로 시를 쓰고, 시와 같은 삶을 살았던 김수영. 김수영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관람 후에도 가슴에 여러 번 메아리쳤다. 이 연극을 보고 난 사람들은 과연 자기 안의 김수영을 찾았을까. 연극을 보고 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분명 들어올 때와는 달라져 있었다.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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