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설레지 않는 결혼 생활, 유부남·녀들의 하소연

[김정훈의 썸<32>]결혼 타이밍은 나이도, 돈도 아니다…사랑없이 가족으로 살아가는 미성숙한 부부들

머니투데이 스타일M 김정훈 칼럼니스트  |  2015.01.15 08:35  |  조회 186768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사진=tvN '일리 있는 사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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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을 하며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업무의 종류나 강도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유부남, 유부녀들의 "요즘은 애인 없으면 능력 없는 거야"라는 말에 맞장구를 치는 일이었다. 불륜을 희화화할 줄이야. 금슬 좋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부부간의 사랑이야 말로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온 필자로선 동의하기 어렵고, 듣기조차 거북스런 대화였다.

"영원한 사랑의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난 이방인이 돼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말했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일종의 의식과 같은 거라고. 그 대단할 것 같은 의식을 치르고 나면 특별할 것 없는 삶이 그저 이어질 뿐이라고 했다. 혹시나 엄습할지도 모르는 사랑의 끝을 피하기 위해 의식을 치르지만, 결혼이야 말로 사랑이란 감정의 종말을 이끌어 내는 행위임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유가 제한되고 책임져야할 일이 늘어나는 지독한 현실 속에서 사랑이란 단어의 두근거림은 그저 사치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부남들은 자신의 아내를 '생활비를 넣어 주면 잔소리랑 용돈을 내뱉는 존재'쯤으로 치부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건 기대도 안하니 괴롭히지나 말았으면 좋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유부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을 남자로 느끼는 것, 그에게 여자로 보이는 건 기대하지 않는다며 다시 두근거리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다.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부부관계보다, 비록 불륜이라 할지라도 다시 가슴 뛰는 존재를 만나 감정을 나누는 일이 훨씬 인간적이지 않냐는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본인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는 건 나쁜 것 같다는 말을 겨우 하긴 했지만.

/사진=tvN '일리 있는 사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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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하면 되지. 왜?"라는 질문에는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가족끼리 무슨 노력이 필요하냐"며 "굳이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관계가 되고 싶어서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잡은 물고기엔 밥을 주지 않으려는' 사람의 본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은 아마도 잡은 물고기에 밥을 주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민해 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할거다. 밥을 주는 간단한 방법조차 고려해본 적 없으니 그 물고기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키우는 법은 알 리가 없다. 잡은 물고기엔 밥을 주지 않는 사람의 본성 같은 건 없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려운 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는 나약함은 있을지 몰라도.

모두들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사랑을 하는 방법은 모른다. 그 상태로 결혼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뭘 하면서 살아가지?'라는 질문을 던져 본 사람은 많겠지만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먹고 살기 바쁘다고, 생각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이라는 이유로 사랑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 된다. 두 사람이 함께 삶을 공유하는 건 어차피 계산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두근거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그 노력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낭만이 사라져 버렸다.

/사진=tvN '일리 있는 사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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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나 의미는 생략되고 결과와 기능만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의 전반적 행태는 사랑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산 가능한 선택만이 합리적이라는 대우를 받고 형체 없는 낭만을 쫓는 건 소모적인 일로 치부될 뿐이다. 연애할 상대,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이 논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심지어 결혼할 타이밍까지 숫자로 계산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결혼을 해야 할 마지노선이 되는 나이,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경제적인 조건과 같은 명확한 숫자만이 타이밍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사랑이 부재한 결혼 생활, 불륜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런 타이밍 설정 오류다.

결혼을 할 타이밍은 나이나 돈으로 정하는 게 아니다. 충분한 연애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고찰된 사랑에 대한 본인의 가치관, 그런 내적성숙도를 파악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게 옳다. 그런데 마치 사회가 정해 놓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에 쫓기거나 경제적 능력에만 휘둘려서, 내적인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결정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끊임없는 관심을 줘야하는 생화보다 조화를 선택하고 마는 사람들. 그럴싸한 형태만 유지될 뿐 향기 없는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거다.

/사진=tvN '일리 있는 사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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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런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은 이런 타이밍을 스스로 결정하여 충분히 의사소통을 한 경우가 많다. 외적인 조건뿐 아니라 내적인 성숙에 의해 타이밍을 정하는 거다. 이들은 둘 사이의 감정이 충분히 무르익어서 다음 단계로 전환이 필요할 때, 계산 가능한 조건이 들어맞을 때보다는 평소 확인할 수 없던 사랑에 대한 가치관 등의 조건이 더 들어맞음을 깨달았을 때 결혼을 결심한다.

이런 커플들은 결혼 준비과정에도 큰 트러블이 없다. 집의 구비 여부와 예단의 규모, 혼수에 대한 고민보다 어떤 가정을 이루고 어떻게 사랑할 건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어서다. 혹자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참 낭만적인 삶을 살고 있다며 코웃음을 친다. 물론 결혼은 현실이므로 마냥 낭만적일 수만은 없을 거다. 그래도 결혼 전에 이미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것들에만 의지하는 건 오히려 흥미가 빨리 떨어지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함께 찾기 위해 노력 하는 시간이 훨씬 즐거운 법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과 사랑하며 살아가는 건 다르다. 불륜을 일종의 기호식품 마냥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으로 가정을 일궈 나가는 사람의 노력을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 없는 가정이 만들어내는 악영향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결핍을 가진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범죄를 일으키는 등 거대담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상사 때문에 야근과 주말근무가 늘어난다는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올바른 회사문화 정착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서둘러 업무를 끝내고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 넘치는 가정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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