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가자"…콧대높은 美백화점, 아모레에 러브콜

[퍼스트무버가 세상을 바꾼다]④아모레퍼시픽, 미국 진출 12년만에 대약진

머니투데이 뉴욕(미국)=송지유 기자  |  2015.07.02 03:25  |  조회 19757
'한강의 기적'으로 통하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원천 기술은 선진국을 따라잡는 이른바 '캐치 업'이었다. 선진국이 시장을 개척하면 성실한 인적 자원과 정부 정책을 동원해 금세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싼 값에 내놨다. 신시장을 개척하지는 못했지만 열린 시장에서는 '패스트 팔로워'(발빠른 추격자)로서 저력을 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방을 통한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는 생존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창조적인 혁신 전략과 경영 철학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대한민국 퍼스트 무버 기업들을 조명한다. 내수 산업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 한국의 문화, 뷰티, 식품, 유통 서비스를 전파하고 있는 기업들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초 미국 뉴욕 맨해튼 59번가 블루밍데일즈 백화점에 입점한 아모레퍼시픽 매장. 직원이 손님들에게 화장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지난달초 미국 뉴욕 맨해튼 59번가 블루밍데일즈 백화점에 입점한 아모레퍼시픽 매장. 직원이 손님들에게 화장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우리와 함께 가자"…콧대높은 美백화점, 아모레에 러브콜
"이 백화점에도 아모레퍼시픽(아모레퍼시픽의 시그니처 화장품 브랜드) 매장이 있네. 잘됐다. CC쿠션 떨어졌는데 여기서 사야겠어." 지난달 15일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59번가 '블루밍데일즈' 백화점 1층. 금발의 뉴요커 제시카 스탠리씨(27)가 친구와 함께 아모레퍼시픽 매장에 들어섰다.

그녀는 3년 전 '아모레퍼시픽 타임 레스폰스' 샘플을 써본 뒤 아모레퍼시픽의 광팬이 됐다. 제시카씨는 "한국에서 재배한 유기농 녹차를 원료로 만들었다는 스토리를 듣고 모든 기초 제품을 아모레퍼시픽으로 바꿨다"며 "기능이 좋아 친한 친구 여러 명에게 아모레퍼시픽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인 미국에서 아모레퍼시픽의 대약진이 시작됐다. 뉴욕을 중심으로 워싱턴, 시카고, 달라스, 마이애미 등 주요 도시 현지인들 사이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급 화장품 브랜드로 확고하게 입지를 굳히면서 숨 가쁜 매출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우리 매장에도 입점해 달라"…美 백화점 아모레에 러브콜=아모레퍼시픽이 미국 시장에 첫 발을 내딛던 2003년 만해도 미국 소비자들은 아시아 화장품하면 일본을 먼저 떠올렸다. 주요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는 '시슬리', '라프레리', '라메르' 등과 함께 '시세이도', 'SK-Ⅱ' 등 글로벌화에 성공한 일본 브랜드들이 좋은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대한민국 1위 화장품 회사인 아모레퍼시픽에게도 미국 시장은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지금과 같은 한류 트렌드가 확산되기 전이라 더욱 그랬다. 아모레퍼시픽은 미국 뉴욕 상위 1%를 타깃으로 하는 최고급 백화점인 '버그도프굿맨' 입점을 목표로 수년을 매달렸다. 실무진을 설득하고, 화장품 원료를 재배하려고 선대 회장부터 수십 년간 일군 제주도 녹차밭까지 보여준 뒤에야 입점 허락을 받았다.

이후 버그도프굿맨 관계자 추천으로 2005년 니먼마커스 백화점으로 유통망을 넓혔다. 2013년 노드스트롬에 이어 지난 6월 블루밍데일즈에도 입점했다. 미국 내 아모레퍼시픽 매장은 백화점에만 62개가 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 운영하는 화장품 편집매장 세포라 입점 매장까지 합하면 261개에 달한다.

아모레퍼시픽에 입점을 요청하는 미국 유통업체도 부쩍 늘었다. 12년 만에 상황이 역전된 셈이다. 에스더 동 아모레퍼시픽 미주법인 부사장은 "무턱대고 매장 수를 늘리기보다는 질적 성장이 중요한 만큼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새 매장을 열기보다 운영 중인 매장을 집중 관리하고 육성해 점포당 효율을 높이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우리와 함께 가자"…콧대높은 美백화점, 아모레에 러브콜
◇장기투자 결실, 미주 사업도 흑자 전환=
아모레퍼시픽은 미국에 진출한 지 11년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이익을 냈다. 2010년 121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349억원으로 늘었다. 한국, 중국 매출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성장이 멈춘 미국 화장품 시장에서 거둔 값진 성과다. 부족한 유통망, 낮은 브랜드 인지도 때문에 적자를 거듭하는데도 단기성과를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투자를 지속한 경영진 역할도 컸다. 아모레퍼시픽은 미국에서 교포나 동양인 고객을 타깃으로 매출을 올리는데 급급하지 않고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고급 유통채널을 뚫고 브랜드를 알렸다.

특히 매출이 매년 평균 40%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콧대 높은 미국 백화점들이 아모레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이 같은 실적 성장세 때문이다. 동 부사장은 "최근 3년간 백화점 입점 화장품 브랜드 중 매출 성장률 상위 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 럭셔리 화장품 시장이 침체된 상태여서 아모레퍼시픽의 약진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대형마트 체인인 '타깃'(749개 점포)에 입점한 라네즈도 매출 견인차다. 제이슨 박 아모레퍼시픽 미주법인 전략기획팀장은 "라네즈는 기초 스킨케어부터 BB쿠션, 수분팩까지 제품이 부족해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라며 "처음엔 4∼5개 품목만 넣었다가 고객 반응이 좋아 현재 20여 개로 품목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전략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을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고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하던 아모레퍼시픽 뉴욕 소호 스파 매장도 과감히 접었다.

동 부사장은 "2~3년 만에 아모레퍼시픽과 설화수, 라네즈 등 브랜드 인지도가 놀랄 정도로 높아졌다"며 "과거에는 매장에서 샘플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백화점 고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했다면 이제는 뷰티 잡지, 온라인 등 매체 광고를 활용해 소비자들이 아모레퍼시픽 매장을 직접 찾아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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