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기쁨 강박의 시대에 슬픔의 중요성을 말하다

[이현지의 컬티즘<57>]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애니메이션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7.23 10:18  |  조회 8557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녔다. 지방 발령이 잦은 아빠가 가족은 떨어져 살면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년 동안 4개의 학교를 전학 다녔으니, 늘 익숙해질 만하면 이별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전학 다니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고, 가서는 늘 새로운 친구들을 바로 사귀게 됐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랬다.

그 기억이 사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전 일이다. 집을 정리하다가 어린 시절 일기장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작고 귀여운 고민들로 채워진 일기장에는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전학을 고통스럽게 생각했는지가 쓰여 있었다. 정든 친구들과의 이별, 낯선 환경, 늘 고역이었던 첫 날 자기소개 시간. 나는 슬프고 힘든 기억들은 잊고 행복한 순간들만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선택적으로 기억할 수 있었을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여자아이가 나온다. 개봉 11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이 영화는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이 낯선 환경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 라일리에게 행복을 되찾아주기 위해 벌이는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귀여운 이미지와 단순한 스토리가 편안함 주면서도 현재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추억'과 '힐링' 코드를 적절히 짚어주면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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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감정'과 '기억'이라는 다소 복잡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창의적이면서도 매우 합리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왜 어떤 노래들은 끊임없이 입에 맴도는지, 왜 어떤 것들은 기억에 남고 어떤 것들은 빠르게 잊혀지는지, 어떤 식으로 기억이 추상화 과정을 거치는지 등 전공과목에서는 꽤 복잡한 이론들로 습득했던 지식들이 쉽고 재밌게 전달된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영화가 끝날 때 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작은 감정들의 모습이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여러 감정 중 '슬픔'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영화에서 라일리의 대표 감정인 '기쁨'은 라일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슬픔'을 고립시키고, 라일리의 기억에 손대지 못하게 막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 '빙봉'이 충분히 슬퍼하고 난 다음에야 슬픈 일을 털어내고 일어서는 것을 보고 난 뒤, 라일리의 행복한 순간이 슬퍼한 뒤에 찾아왔었던 것을 알고 난 뒤에는 '슬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기쁨의 순간도 없다. 아니, 슬픔이 없다면 사실 어떤 감정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슬플 때 충분히 슬퍼하는 것으로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잊어버린다. 자기 자신의, 혹은 자신의 주변사람들의 슬픈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늘 기뻐하기만을 바란다. 마치 라일리의 대표 감정인 '기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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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기쁨 강박의 시대, 행복도 경쟁하는 시대다. 한 조사에 따르면 3명 중 1명이 "SNS에서 행복을 과장해봤다"고 답했다고 한다. 기쁨과 행복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잉이 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한병철 교수는 자신의 저작 '피로사회'에서 이렇게 긍정성이 과잉되는 사회에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그것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얻고 소진되어간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무감각한 상태로 소진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 따르면, 내가 어린 시절 전학과 관련된 일들을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대표 감정이 슬프고 힘든 부분을 제거하고 좋은 부분만 중요기억(코어기억)으로 저장해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렇게 선별적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어른이 된 우리가 어린이들도 그들의 세계가 무너질만한 큰 고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서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기쁨'이 이야기하듯이 섣불리, "그 아이는 이제 겨우 열 한 살인걸요. 뭐 별일이야 있겠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그랬다.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영화 '인사이드 아웃' 역시 그렇다.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삶의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다. 열 살에 읽었을 때와 스무 살에 읽은 '어린왕자'는 느껴지는 바가 다르지만 언제 읽어도 재밌듯이, 어린이 관객들과 어른 관객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다.

'인사이드 아웃' 기쁨 강박의 시대에 슬픔의 중요성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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