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적 죽음의 진실?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이번주 따끈따끈 새책]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반 고흐 타살설 제기 논쟁적 논픽션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  2016.02.10 08:11  |  조회 7789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 '까마귀가 있는 밀밭'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 '까마귀가 있는 밀밭'
'네덜란드인 판 호흐는 성(性)적인 사진과 책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녔고, 숲에선 자위행위에 몰두했다. 10대 소년들의 괴롭힘과 조롱을 받다가 총격을 받아 죽었다.'

'잭슨 폴락: 미국의 전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전기 전문작가인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에서 증언과 기록 등을 토대로 묘사한 빈센트 반 고흐의 논쟁적 초상이다. '핀센트 판 호흐'는 네덜란드 표기법에 따라 표기한 그의 이름이다.

반 고흐는 알려진 대로 현실감이 떨어지고 열등의식에 시달렸던 인물이었다. 종종 자기 파괴적인 외고집이었다. 귀를 자른 행위나 자살설은 반 고흐를 신화적 예술가의 반열로 올려놓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저자들은 반 고흐 자살설의 모순점을 낱낱이 지목하며 그의 신화를 서슴없이 해체한다.

반 고흐가 숲에서 자위하는 모습을 목격한 한 10대는 이후에 그를 보다 잔인하게 괴롭히자고 결심한다. 사건의 배경은 한 농가의 안마당. 거친 서부에 대한 동경을 품은 10대와 그 10대가 지닌 오작동이 잦은 권총 한 자루, 그리고 술 취한 반 고흐가 있다. 책의 최후반부인 부록 '판 호흐 치명상에 관한 기록'에 실린 반 고흐 최후의 정황이다. 책의 원서가 출간된 이후 서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반 고흐 타살설이다.

저자들이 이처럼 반 고흐 신화해체에 나선 이유는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심지어 달콤하기까지 한 이미지로 변질한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함이다.

책에는 반 고흐 본인의 방대한 기록과 독서광인 그가 읽었던 수 많은 글, 그의 집안 사람들과 친구, 동료 등 주변 인물들과 교류가 세세하게 담겼다. 저자들은 세밀하게 조사한 그의 모습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와 영감의 원천을 짚고자 했다.

반 고흐는 수 차례 청혼이 실패했고 원하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던 가혹한 청년기를 보냈다. 그 삶의 난기류는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고민과 번민이 짙게 담겼다.

저자들은 반 고흐가 반복적으로 그린 그림을 통해 그의 피폐한 속내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한 예로 저자들은 반 고흐가 '씨 뿌리는 사람'을 주제로 삼은 그림을 거듭 그렸지만, 농사일을 그리려 한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쉴 새 없이 붓을 놀려 습작을 거듭하는 자신의 노력을 드러내는 제재로 썼다는 해석이다. 반 고흐는 연인인 매춘부 신 호르닉을 헐벗고 처참한 모습으로 그렸다. 연인이 아니라 반 고흐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을 그림에 투영했다는 게 저자들의 분석이다.

결국 저자들은 '반 고흐'라는 작가가 완성돼 가는 과정이 아니라 '판 호흐'라는 한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기록한 셈이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괴팍한 천재 화가이기 전에 정에 굶주린 연약한 인간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스티븐 네이페,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지음. 민음사 펴냄. 972쪽/4만5000원.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