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교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 이유

[이현지의 컬티즘㉑]그의 책은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4.11.03 13:58  |  조회 6086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표지
/사진=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표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에 들어온 직후였다.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 작품인 '상실의 시대'가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하루키 열풍이 불던 때였다. 대학생, 특히 국문학도였던 나와 내 친구들에게 하루키 소설은 당연히 읽어야하는, 청춘의 교본 같은 것이었다. 인간관계, 특히 남녀 간 복잡한 감정에 미숙했던 스무살의 나에게 하루키의 소설은 낯설고도 충격적이며, 한편으로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하루키는 확실히 자신의 색이 뚜렷한 작가다. 주제와 내용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 그 관계를 출발점 삼아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내용이 기저에 깔려있다. 이 관계는 대부분 짝수가 아닌 홀수다. 대표작 '상실의 시대'의 경우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처음에는 나오코와 기즈키, 그리고 기즈키의 죽음 이후에는 나오코와 미도리로 삼각관계의 축을 유지한다. 이 삼각관계는 어느 한쪽이라도 빠지면 무너지는 상태로 위태롭게 유지된다.

2013년 작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경우도 그렇다. 완벽한 관계를 형성하던 5명의 남녀 친구가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유일하게 이름에 색깔을 뜻하는 한자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어느 날 이유 없이 이들 사이에서 퇴출을 당하면서 관계는 흔들린다. 그리고 다자키 쓰쿠루는 절망 속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성찰을 시작한다.

/사진=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표지
/사진=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표지
하루키의 단편 신작 '여자 없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7개의 단편은 각각 어떤 계기로 '관계'에 균열이 생겨 결국은 혼자 남겨진 남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자기 부인과 잠자리를 한 남자와 친구가 되기도 하고('드라이브 마이 카'), 거식증에 걸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하며('독립기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가 끊어진 다음의 자기 성찰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들 주인공이 그렇게 하는데 사용하는 방식은 일방적인 묘사나 설명이 아닌 '대화'다. 그것은 주인공들 사이의 대화일 수도 있고, 작가와 독자 사이의 대화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일방적인 묘사나 설명보다는 대화적인 방식이 많이 차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라이브 마이 카'의 경우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딸 뻘 되는 여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셰에라자드'는 한술 더 떠서 천일야화를 들려주는 왕비처럼 매번 침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의 대화는 일견 쓸데없는 부분까지 이어지고,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종결되지 않은 채로 한 편의 소설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은 이 대화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바흐친이 대화주의에서 설명하듯 '메시지가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메시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하루키 소설의 매력은 섬세한 감정묘사와 흥미로운 소재들, 그리고 이들을 적절히 버무리며 전개해나가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 구성이다. 대개 이러한 하루키의 힘은 장편소설에서 빛을 발한다. 앞서 말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일상적인 이야기에 미스터리하고 판타지 같은 사건들을 가미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부분까지 독자를 끄는 힘을 잃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듭 언급되는 이유도 이러한 흡입력 때문일 것이다.

물론 '흥미위주의 이야기로 인기를 끈다'거나, '깊이가 없다'거나, 다양한 이유로 하루키에 대한 혹평도 많다. 하지만 내가 하루키에게 보냈던 20대 초반의 찬사를 더 이상 떠올리지 않는 나 역시 여전히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는다. 때로 공감하고 때로 실망하지만 여전히 그의 책은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뛰어난 작가임에 분명하다.

청춘의 대표작이라고 불리웠던 '상실의 시대' 이후 그의 책의 주인공들은 늘 20대의 청춘들이었다. 하지만 '여자 없는 남자들'의 주인공들은 거의 대부분 40~50대의 중년들이다. 그 때문인지 이들이 관계와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부분은 더 진중하고 깊이를 가지게 됐다. 어쩌면 하루키 자신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흡입력과 함께 깊이를 더하게 될 그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청춘의 교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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