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 발언, 성희롱인가 마녀사냥인가

[이현지의 컬티즘㉒]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과하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4.11.13 12:05  |  조회 7635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머니투데이DB
/사진=머니투데이DB
대학시절, 터프한 캐릭터의 한 여자 선배는 걸핏하면 남자 후배들에게 성적인 농담을 하곤 했다. 국문학과였기에 더 그랬던 것일까. 선배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문학을 하는 여성 혹은 진보적인 현대 여성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남자라고 해서 성적 발언이 불쾌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행동을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여자들의 성적 발언을 희롱으로 여겨 기분 나빠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남자들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남녀평등 논리가 자리 잡고, 여성이 남성의 보조자가 아닌 경쟁자로 변신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역차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30대의 젊은 남성층은 '남자는 하면 안 되는데 여자는 해도 되는 것들'에 대해 예민하다. 성희롱도 그 중 하나다. 최근 SBS '매직아이'에서 칼럼니스트 곽정은이 한 발언 역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에 없이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방송을 보면서 그녀의 발언이 불쾌하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혹자가 이야기했듯이, 그 발언만 떼어놓고 봤을 때는 성희롱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다면 성희롱으로 확정짓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성희롱이라는 것은 듣는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성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다. 하지만 곽정은은 전혀 맥락과 상관없는 성적인 이야기를 자신의 욕망에 못 이겨 농밀한 눈빛으로 난데없이 던진 것이 아니다. 섹스 칼럼니스트의 자격으로 밤 11시에 하는 심야 토크쇼, 그것도 ‘센 언니들의 거침없는 입담’을 콘셉트로 잡고 있는 ‘매직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옆에 앉은 남자에 대한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자신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최대한 은유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그것이 시청자들과 제작진이 본인에게 기대하는 대답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진=SBS '매직아이' 방송화면 캡처
/사진=SBS '매직아이' 방송화면 캡처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는 것이니 그 발언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시청자가 분명 있었을 수 있다. 15세 관람가의 지상파 방송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곽정은 본인이 조금 더 조심했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리고 이처럼 예민한 문제로 사건이 불거졌다면, 조목조목 변명을 하기보다는 일단 사과를 하는 것이 더 올바른 대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곽정은이 이런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편집의 묘도 발휘하지 않은 채 당사자 개인만 뭇매를 맞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제작진들의 무책임함도 문제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과도한 반응 역시 정당하지는 않다. 곽정은을 비난하는 대다수 누리꾼들이 느끼는 불쾌감의 중심에는 그녀의 발언 자체가 아닌 '그 말을 남자가 했다면'이라는 가정이 있다. 한 마디로, 그녀의 발언 자체보다는 남자들은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여자라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역차별 논리다. 군 가산점제 논란부터 이어져온 남성들의 뿌리 깊은 억울함이 이 사건을 큰 이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방송인이 말실수를 했다. 그것이 사건의 전부다. 그 발언에 대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발언에 대해서만'이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책임을 한 개인에게 떠넘기는 식이 되어버리거나 개인의 부도덕함을 상정해버리는 것은 과하다. 이 부분을 조심하지 않으면 발언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빛을 잃고 그저 다른 문제로 인한 짜증이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마녀사냥이 된다. 그간 몇몇 방송인에 대한 마녀사냥의 결과는 아직 모두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이성적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행동할 때다.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 발언, 성희롱인가 마녀사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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