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제3의 멤버 '자막'…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은?

[이현지의 컬티즘㉗] 정보 전달 '일본 자막' VS 재미 요소 '한국 자막'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4.12.22 09:54  |  조회 17012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후지TV '도주중', 'VS아라시' 방송화면 캡처
/사진=후지TV '도주중', 'VS아라시' 방송화면 캡처
올해 첫 휴가로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따뜻한 날씨, 파란 하늘, 옥빛 바다를 기대했다. 하지만 12월의 오키나와는 예상과는 달리 비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가을 날씨였다. 주변은 놀 거리, 즐길 거리도 없는 바닷가였고, 운전 초보인 두 여행자가 차를 몰고 나가기엔 무리였다. 그래서였다. 다다미방에 앉아 일본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된 이유 말이다.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대충 분위기로 파악한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은 한국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차이점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자막이다. 다양한 크기와 색, 모양과 글씨체로 화면 전체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국내 예능의 자막과는 달리 일본 예능의 자막은 한마디로 투박했다. 그야말로 정보 전달을 위한 자막, 예를 들어 출연자의 프로필이나 방금 했던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식이었다. 글씨체나 색깔에도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마치 90년대 우리나라 방송의 자막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예능에서 본격적으로 자막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90년대다. 김영희PD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1994년 일본 후지TV에서 6개월 연수를 받고 들어와서 시도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자막이었다"며 "정보 전달뿐만 아니라 화면 전체에 생동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자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막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첫 방송 이후 항의 전화가 빗발쳤지만 그대로 진행을 했고 6개월 후에는 타 방송에서도 모두 자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진=MBC '무한도전', KBS2 '해피선데이 - 1박 2일 시즌3' 방송화면 캡처
/사진=MBC '무한도전', KBS2 '해피선데이 - 1박 2일 시즌3' 방송화면 캡처
그렇다면 우리나라 예능에서 자막 사용은 일본의 그것을 벤치마킹한 결과다. 하지만 일본 예능의 자막이 그대로 형식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온 반면, 국내 예능에서의 자막은 진화를 거듭했다. 특히 MBC '무한도전'에서 자막의 역할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김태호 PD의 존재감이 처음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한꺼번에 떠들썩하게 장난을 치는 순간이나 혹은 아무 표정 없이 서있는 순간조차 자막이 시청자들에게 그 장면에서의 재미요소를 찾아준다. 결국 자막은 정보 전달을 넘어서서 PD의 제작 의도를 실시간으로, 그리고 아주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게 된다.

MBC '일밤-진짜 사나이' 역시 자막으로 먼저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이다. 인터뷰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넣지 않고, 방금 봤던 장면과 이어지는 이름, 예를 들어 '자부심 충만한 통신병' 등으로 바꿔서 넣는 방식으로 재미 요소를 더한다. 최근에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4'의 방송 분위기를 잘 살리는 사랑스러운 폰트, SBS '정글의 법칙'에서는 정글의 거친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폰트를 사용하는 등 글씨체도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이제 자막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미요소 중 하나가 됐다.

이렇게 자막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한국 예능에서는 프로그램 자체의 내용만큼이나 편집의 기술이 중요해졌다. 일본은 1시간짜리 방송에 녹화시간 3시간을 넘지 않는 것에 비해 국내 예능의 녹화시간이 훨씬 긴 이유도 그 때문이다. 후편집에 더 힘을 쏟는 한국 예능은 출연자들을 자유롭게 카메라 앞에 던져두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장면들에서 재미요소를 뽑아 자막으로 다듬어서 최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국내 예능이 강세를 보이면서 중국으로 포맷이 수출된 KBS2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 등의 프로그램도 자막으로 들어갈 '헐'이라는 단어의 느낌을 표현할 중국 표현을 찾기 위해 몇 시간을 회의했다고 한다. 무분별한 남발이나 비속어 사용 때문에 자막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잘 활용된 국내 예능의 자막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앞으로도 프로그램 내의 보이지 않는 멤버로써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할 자막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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