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와 식사도 대리만족 한다… 먹방과 쿡방의 시대

[이현지의 컬티즘<39>] 먹기 위해 산다는 것, 성공을 위해 사는 것보다 인간적이지 않은가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03.16 10:01  |  조회 6375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tvN '삼시세끼 어촌편'
/사진=tvN '삼시세끼 어촌편'
"오늘 뭐 먹지?" 오전 11시부터 우리는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힘겨운 업무시간 중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어떻게든 알차게 보내고 싶으나 여러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니 멀고, 비싸다. 근처로 가자니 늘 같은 메뉴가 지겹다. 오전 11시부터 이어지는 고민과 토론 끝에 팀원들은 오늘도 근처 밥집으로 점심을 '때우러'간다. 그나마도 5분만 늦게 가면 몰려온 근처 직장인들 때문에 대기시간은 무한정 길어진다.

저녁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약속이 없는 저녁, 혼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요리하기는 귀찮고, 간단히 먹기에 좋은 배달음식은 건강에 안 좋다. 건강에 좋고, 비싸지 않으면서 간단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생각은 아마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한번 이상은 하게 되는 고민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방송 프로그램들 중 '먹방'과 '쿡방(Cook+방송)'이 뜨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연예인들이 요리를 하는 모습은 예전부터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이기는 했다. SBS '일요일이 좋다 -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출연자들이 숨은 음식솜씨 뽐내거나, 몰래 라면 스프로 맛을 내면서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과거 KBS2 '해피선데이 - 1박 2일'이나 SBS '일요일이 좋다 - 런닝맨' 역시 종종 요리를 아이템으로 잡았다. KBS2 '해피투게더'도 출연자들의 토크보다 그들의 야식 메뉴를 소개하는 '야간매점'이 더 인기를 끌었다. 특히 '야간매점'은 간단하고 새로운 레시피들로 시청자들에게 큰 관심을 얻었고, 그 레시피들을 그대로 따라하는 블로거들이 등장해 인기를 더 부추겼다.

이러한 기존 프로그램들이 프로그램 속의 코너로 포함되어 있거나 한 주의 아이템으로 활용됐던 것과는 달리,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방송들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면에 내세운다. '먹방'의 진화된 버전을 보여주는 올'리브 '테이스티로드'는 잘 먹는 것으로 유명한 여자 연예인들이 맛집을 소개하는 내용이 주다. 시청자들은 맛집 정보도 얻고, 잘 먹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연예인들의 복스러운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도 얻는다.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지난주 대단원의 막을 내린 tvN '삼시세끼 어촌편(이하 '삼시세끼')'은 '쿡방'의 진화된 버전이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얼마동안 머물며 직접 요리를 한다는 내용은 '패밀리가 떴다'와 비슷해 보였다. 1박 2일 동안 농촌에 머물면서 다양한 게임을 하거나 그 지역의 일을 도우면서 가족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제였던 '패밀리가 떴다'와 달리, '삼시세끼'는 그야말로 삼시세끼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던' 차승원의 음식 솜씨가 또한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남성 시청자들에게 따라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사진=올'리브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화면 캡처
/사진=올'리브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화면 캡처
요리 실력과 더불어 끼와 재능을 가진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들의 등장도 새로운 '쿡방'의 트렌드다. 푸근한 가정주부의 모습을 한 요리 전문가가 등장했던 기존의 요리 프로그램과 달리 이제는 외모까지 훈훈한 남성 셰프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요리에 대한 철학과 스토리를 던져주는 이들은 단순히 맛있는 요리 레시피 전달자를 넘어서 그 자체로 여성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훌륭한 콘텐츠가 된다.

빠르게 성장하는 현대사회에서 '먹거리'에 집중하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졌던 시기가 있었다. '엥겔지수(지출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가 높을수록 저소득층이라는 둥,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웰빙' 열풍은 다시금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것으로도 위안 받지 못하는 이 바쁘고 외로운 시대에 '먹는다'는 원초적인 인간의 행위는 사람들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먹방'과 '쿡방'이 새로운 힐링 콘텐츠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살기 위해 먹지 말고, 먹기 위해 살아라" 미식가로 유명한 음악 평론가 강헌 교수가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걸신이라 불러다오'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맛을 음미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음식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예술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삶의 즐거움을 가까이 느낄 줄 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성공을 위해 사는 것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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