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여성 래퍼들의 각본없는 드라마 '언프리티 랩스타'

[이현지의 컬티즘<44>] 우리도 언젠가 가져봤던 어린 날의 순수한 꿈을 떠오르게 만든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4.20 09:28  |  조회 6511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Mnet
/사진=Mnet
어느날 홀연히 국내 음악 인기 순위에 보라색 앨범이 등장하더니, 점점 그 수가 늘어갔다. 치타, 키썸, 졸리브이 등 이름도 생소한 래퍼들의 곡이 꽤 신선하고 좋아서 계속 듣게됐다. 한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에서 나온 곡들이라는데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서 다시 보기를 찾아 봤다. 전체를 다 볼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정주행'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 보고 난 후에는 모든 대화를 랩으로 하면서 주변에 민폐를 끼칠 만큼 팬이 되어 있었다.

아마 나만 그런 것은 아닌듯 하다. 언론에서는 치타의 화장법, 제시의 행동, 키썸의 인터뷰, 타이미의 SNS까지 출연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연일 화제에 올린다. 각종 프로그램의 러브콜과 인터뷰가 이어지는 가운데, 오는 25일부터 이들의 투어콘서트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유명 가수들의 피쳐링으로 참여한 곡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Mnet '언프리티 랩스타' 후폭풍이 거세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래퍼 서바이벌 Mnet '쇼 미 더 머니' 시리즈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으로, 국내 최초의 여자 래퍼 컴필레이션 앨범 제작을 놓고 8인의 실력파 여자 래퍼들이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언프리티 랩스타'가 시청자들에게 이토록 어필하는데는 일단 대결 과정에서 만들어진 음악들의 완성도가 큰 몫을 차지한다.

/사진=Mnet '언프리티 랩스타' 방송화면 캡처
/사진=Mnet '언프리티 랩스타' 방송화면 캡처
기존의 음악들을 출연자들이 리메이크하는 여타 음악 서바이벌과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국내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제작한 6개의 곡을 각 래퍼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해석하고 자신이 직접 쓴 랩구절로 완성한다. 그들 중 하나가 앨범의 한 트랙을 차지하게 되지만, 하나의 비트에 다양한 버전의 음악이 탄생되는 과정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경이로운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이 속한 세계가 비주류이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해 온 여성 래퍼들이다. 그 자체로 힙합인 제시, 한마리 짐승과도 같은 치타, 그런 치타를 엄마라고 부르는 키썸, 아이돌 그룹 AOA 리더 지민, 폭풍적인 랩 실력의 고등학생 래퍼 육지담, 그리고 과거 디스 랩으로 화제가 됐던 졸리브이와 타이미까지.

만들어진 연예인이 아닌, 스스로 부딪치며 자신을 만들어온 개성있는 여성 래퍼들. 가감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의 모습은 순수하고 때로 위험해서 마치 아름다운 야생짐승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매혹적이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스웨그(swag)'를 잃지 않는다. 직접 쓴 가사로 비트를 완성하고 보는 이들을 열광하게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이들은 래퍼를 넘어선 예술가이기도 하다. 한국에 이렇게 재능있고 매력적인 여성 래퍼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자랑스럽다.


/사진=Mnet '언프리티 랩스타' 방송화면 캡처
/사진=Mnet '언프리티 랩스타' 방송화면 캡처
한 출연자가 '악마의 편집'이라고 표현했듯이, 보는 이의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프로그램 자체의 구성력도 프로그램의 매력지수를 높이는데 한몫한다. 예를 들자면 이 프로그램은 여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각 출연자의 연습과정 혹은 준비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출연자의 개인사나 그들간의 사적인 관계 역시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보여주는 것은 오직 미션과 완성된 무대, 그리고 인터뷰다. 하지만 완성된 무대, 그리고 이들이 직접 쓴 랩 가사는 그 자체로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래퍼는 랩으로 말한다"고 이들은 종종 말한다. 이들은 화가 나도, 슬퍼도, 즐거워도, 신이 나도 랩을 한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자신감, 포기하지 않는 순수한 열정. 예쁘지 않은, 예쁜척하지 않는, 하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8명의 래퍼들의 8주간의 드라마는 우리도 언젠가 가져보았었던 어린 날의 순수한 꿈을 떠오르게 만들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곧 시작될 시즌2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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