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가 다된 밥에 '맹꽁치'를 빠트린 이유

[이현지의 컬티즘<50>] 스펙 좋은 훈남 셰프의 등장이 수많은 '미생'들의 분노를 산 건 아닐까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6.01 09:55  |  조회 8712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JTBC '냉장고를 부탁해' 공식 홈페이지
/사진=JTBC '냉장고를 부탁해' 공식 홈페이지
최근 넘쳐나는 요리 예능 중에서도 JTB '냉장고를 부탁해'는 단연 인기 프로그램이다. 일단 MC인 김성주, 정형돈의 합이 좋다. 김성주가 요리 장면을 맛깔나게 중계하고 유려한 말솜씨로 부드럽게 전체적인 진행을 맡는다. 그 사이에 정형돈은 중간 중간 재치 있는 말을 던져 웃음을 주고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잡아준다.

출연진이 자신의 집에 있는 냉장고를 직접 스튜디오로 가지고 와 그 안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라는 콘셉트도 흥미롭다. 엄청난 재료들이 필요한 부담스러운 요리가 아니라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짧은 시간에 만들어내는 맛있는 음식들이기 때문에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치 예전 KBS2 '해피투게더' 속 '야간매점' 코너가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쉽게 마니아들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새로운 출연자인 맹기용 셰프가 논란이 된 것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인기를 얻어 고정 시청자들이 형성된 프로그램일수록, 그리고 출연자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히 구축돼있고, 그들 간의 '케미(출연자들이 잘 어울리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가 잘 형성돼 있을 경우, 이 중 한명의 자리를 뉴페이스가 차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례로 얼마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MBC '무한도전'의 '식스맨 프로젝트'가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가 지나치다. 맹기용 쉐프에 대한 시청자들의 극렬한 혐오 말이다. 시청자 게시판이 마비될 정도로 터져나온 불만의 이유는 대부분 맹기용 쉐프가 '괴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만든 것은 꽁치가 들어있는 샌드위치였다. 여기서 그는 비린내를 잡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러서 대결에서 졌다. 그가 맛없는 음식을 만들었다면 그 결과는 대결에서 지는 것으로 끝나야한다. MC들과 다른 출연자들은 처음이라 허둥대는 그를 적당히 구박하고 적당히 격려하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왜 시청자들은 맹기용 셰프의 신상을 털고, 그의 하차를 주장하며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사진=JTBC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화면 캡처
/사진=JTBC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화면 캡처
사실 맹기용 셰프를 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냉장고를 부탁해'의 고정적인 시청자들이 많다. 이들은 '털그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박준우 셰프가 맹기용 셰프에게 밀렸다고 생각한다. 박준우 셰프가 녹화당일 올린 SNS를 근거로, 제작진이 얼굴 잘생기고 스펙 좋은 꽃미남 셰프를 출연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해온 박준우 셰프에게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 돌았던 것이다.

제작진이 뒤늦게 '쉐프 로테이션제'라는 것을 들어 기존 멤버인 박준우 셰프가 완전히 하차한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무마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박준우 셰프에 대한 동정론과 맹기용 세프에 대한 비난으로 몰렸다. 어쩌면 시청자들은 박준우 셰프에게 비정규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장그래'의 모습을 대입했을지도 모른다. 스펙 좋은 굴러온 돌이 열심히 일해온 박힌 돌을 너무나 쉽게 빼버리는 현실이 이 시대 수많은 '미생'들의 분노를 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최근 시청자들이 방송 제작과정에 깊게 관여하게 된 현상 역시 한 몫 했을 것이다. 방송 제작의 주도권은 PD에게 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거물급 스타의 요구에 따라 프로그램 내용이 바뀌면서 그 주도권이 출연자에게 넘어가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시청자들이 방송 내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주도권이 어느정도 시청자에게 넘어가버린 듯하다. 제작과정에서 시청자를 고려하고, 시청자가 능동적 역할을 하는 방송은 좋다. 하지만 시청자 게시판에 특정 출연자에 대한 출연 반대로 도배를 하는 이러한 상황은 조금 씁쓸하다.

'냉장고를 부탁해' 제작진은 맹기용 셰프의 두 번째 촬영 역시 마쳤으며, 하차는 없다고 일갈했다. 맹기용 셰프는 정신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출연 반대의 이유가 요리 때문이라면 다음 회에 멋진 요리를 선보이면 된다. 의도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사건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얻어 시청률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그를 응원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음 회를 기다리고 있다. 한참 도마 위에 올랐던 '무한도전'의 식스맨 광희에 대한 논란은 이제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실력이 있다면, 언제든 기회는 그 자리에 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