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가 유토피아 사라진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

[이현지의 컬티즘<51>]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좋지만 무모한 희망이어선 안된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6.08 09:58  |  조회 5338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일부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연일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화제다. 감기 바이러스의 일종일 뿐이다, 젊은 사람들은 걸려도 금방 낫는다더라, 접촉이 없으면 감염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을 들어도 불안하다. 게다가 며칠 전, 어릴 때부터 알던 지인이 메르스 확진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자 더욱 걱정이 된다. 사람 많은 곳에서 기침만 한번 해도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질 정도다.

사실, 가끔 이 모든 상황이 영화 같이 느껴진다. AI, 에볼라, 그리고 메르스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치명적 전염병들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고 있지만, 언젠가는 정말 우리 모두가 방독면을 쓰고 다녀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점점 지구는 척박해지고, 인류는 다시금 생존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바로 그 미래의 시간을 그린 영화가 바로 얼마 전 누적 관객 300만을 거뜬히 넘기며 박스 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 맥스')'다.

'매드맥스'는 1979년 멜 깁슨 주연으로 처음 등장해 전 세계적인 흥행은 물론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들에 큰 영향을 끼친 걸작 시리즈의 연속편이다. 하지만 전작을 모르더라도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희망 없는 세상, 미친 놈만 살아남는다"는 캐치 프레이즈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 영화를 그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톰 하디,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흥행보증 배우들의 출연도 매력을 더한다. 특히 CG를 사용하지 않고 실제 자동차를 제작하고,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는 아날로그 액션의 진면목을 선보였다는 점도 놀라운 부분이다.

이 영화를 누군가는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누군가는 환경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또 어떤 이는 전무후무한 액션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나에게 '매드맥스'가 흥미롭게 다가왔던 부분은 '구원(redemption)'과 '희망'을 찾아 떠난 퓨리오사 무리가 결국 '녹색의 땅'은 없음을 깨닫고 다시 자신들이 떠나온 '시타델'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이 부분은 배우 김혜수, 김고은 주연의 '차이나타운'과 묘하게 겹쳐지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스틸컷/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차이나타운'에서 버려진 아이 일영(김고은 분)은 버려진 채 차이나타운에서 생존한다. 차이나타운밖에 몰랐던 일영은 석현(박보검 분)을 알게 된 후 또 다른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결국 일영이 돌아가는 곳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엄마(김혜수 분)가 있는 곳, 지옥같은 차이나타운이다. 갈 곳이 없어서다. '매드 맥스'의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분)가 소금강에서 회귀하는 구조와 동일하다. 결국 꿈꾸던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금 지옥같은 현실로 돌아와 싸워 이기는 내러티브다.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책 '모두스 비벤디'라는 책에서 근대를 '정원사의 시대', 현대를 '사냥꾼의 시대'라고 말한다. 정원사의 시대는 아직 유토피아를 꿈꾸며 사는 시대, 길의 끝에 유토피아가 있어서 그 곳을 바라보는 삶을 말한다. 하지만 유토피아가 사라진 현대를 사는 우리들, 사냥꾼에게 길의 끝은 수치스러운 패배일 뿐이다.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사냥꾼이 되느냐(죽이거나), 사냥감이 되느냐(죽거나)다. 차이나타운의 일영이나 시타델의 퓨리오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냉철한 은유다.

일영이 엄마를 죽이고 만들어갈 차이나타운, 퓨리오사가 임모탄(휴 키스-번 분)을 죽이고 만들어갈 시타델은 이전과 다를까? 그들은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그 곳에서 만들어갈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영화는 그 후의 모습을 보여주기 전에 끝이 난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영화관을 나선다.

유토피아가 사라진 시대에도 우리들은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꾼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임모탄이 천국으로 데려가줄 것이라고 믿는 '워보이'나 '녹색의 땅'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소금강을 건너려는 퓨리오사처럼 무모한 희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현실적인 유토피아를 찾아야한다.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라고 영화의 마지막 물음이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매드 맥스'가 유토피아 사라진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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