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썅년'이라 불리는 여자와 '바보'라 불리는 남자가 만났을 때

[이현지의 컬티즘<56>] 연극 '햇빛샤워'…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쏟아지는 햇빛에 희망을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머니투데이 칼럼니스트,   |  2015.07.17 08:47  |  조회 5635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한참 서울 곳곳에 싱크홀(sink hole)로 인한 사고가 생기던 무렵이다. 갑자기 지반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위를 걷던 몇몇 사람이 싱크홀에 빠졌는데, 그 장면이 우연히 휴대폰 카메라에 잡혔다. SNS에서 본 동영상에는 30cm 간격으로 걸어가는 두 남녀가 있었다. 그 중 조금 앞서 있었던 남자는 싱크홀 속으로 빠져버렸고, 조금 뒤쳐졌던 여자는 휘청였지만 빠지지 않았다.

왜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걷던 한 사람은 싱크홀에 빠지고, 한 사람은 그렇지 않았을까. 남자가 성급한 사람이라 조금 더 빨리 걷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가 자신이 믿는 신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그날따라 남자의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의 무게가 더 많이 나가서? 과학적, 종교적, 토속 신앙적 이유들까지 얼마든지 들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남자가 싱크홀에 빠지고 조금 뒤쳐졌던 여자가 그렇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다.

여기, 태어나는 순간부터 싱크홀에 빠진 두 남녀가 있다. 여자는 자신이 이 싱크홀에 빠진 이유를 이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바꾸려고 발버둥친다. 이에 비해 남자는 싱크홀에 빠진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한다. 과연 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남산예술센터에서 막을 올린 장우재 연출의 신작 '햇빛샤워' 이야기다.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여주인공 광자는 가난하고 부모님도 없이 햇빛도 들지 않는 반지하방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놀리는 반 친구를 칼로 그어버린 후 전과자가 됐다. 전과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기도 힘들고, 좋은 직업을 가지기도 힘들다. 광자는 이름을 바꾸는 데 돈이 모자라서, 또 매니저로 승진하기 위해 남자들에게 서슴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도와준 사람도 배신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중 몇몇은 광자를 '썅년'이라고 표현한다.

광자가 세 들어 사는 집 양아들 동교는 이와 정반대 캐릭터다. 부모님이 안계시고 가난하다는 것은 광자와 같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정반대다. 가난한 달동네 이웃들에게 계속 연탄을 나눠주면서 나에게 잘 해주는가와 관계없이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언뜻 선한 의도로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대한 철저한 거부다. 광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의 가치기준에 따라 살아가려는 것과는 반대로 동교는 이를 완벽하게 차단해버린다.

세상일에 원인과 결과를 지워버린다면 어떨까. 가난도 불행도 모두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삶이 불안정할까. 그렇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든 일에 원인을 찾고, 규칙을 만든다. 광자의 경우 이름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 후에도 광자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동교의 경우 '관계'가 불행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이들이 자신의 싱크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죽음밖에는 없다.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창작 초연작과 동시대성을 고집하는 남산예술센터의 연극들은 연극인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지만 때로 대중들이 쉽게 접하기는 어려운 작품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장우재 연출의 '햇빛샤워'는 언제든 싱크홀에 빠질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공감과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부분에 광자와 동교의 선택이 너무 극단적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문학적이고 깊이 있으며,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광자는 골연화증에 비타민D가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좁은 반지하방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몸에 바른다.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잃지 않는 광자의 순수한 면을 보여주는 장면이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쏟아지는 햇빛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장면이다. 우리는 언제든 싱크홀에 빠질 수 있는 불안한 '우연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햇빛처럼 쏟아져 내리는 '희망'이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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