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반일, 애국심과 이기심 사이를 방황했던 사람들

[이현지의 컬티즘<60>] 영화 '암살', 같은 집에서 나온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아온 이야기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08.13 15:23  |  조회 4491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영화 '암살' 포스터/사진=(주)쇼박스
영화 '암살' 포스터/사진=(주)쇼박스
스스로 애국심이 크다고 생각한다. 광복 전후를 경험한 윗세대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는 일제 강점기나 전후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책들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것들이 거의 없다. 나조차도 광복 70주년에 관심사는 15일이 토요일이라는 것, 그리고 14일이 공휴일로 지정됐다는 것 뿐이었다. 영화 '암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개봉 3주 만에 800만을 거뜬히 넘긴 영화 '암살'은 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사적 사건을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는 것과 영화 '오션스 일레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화려한 출연 배우들, 그리고 그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 최동훈 감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세련된 영상미 등 수많은 흥행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10부작 드라마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들과 관련된 수많은 스토리들이 펼쳐지는데도 리듬감 있는 전개로 이야기가 잡다하게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으며,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전혀 지루함이 없게 흘러간다.

영화 '암살' 스틸컷/사진=(주)쇼박스
영화 '암살' 스틸컷/사진=(주)쇼박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각 역할을 제일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점이 '신의 한 수'다. 예를 들어 전지현은 여성 독립군 안옥윤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한 순간도 예뻐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전지현은 영화 '베를린'에서부터 보여준 '연기파 배우'로의 가능성을 이 영화에서 더욱 공고히 했다. 이정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신세계'에서 범죄조직에 잠입 수사하는 경찰로서의 내적 갈등을 매우 잘 표현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친일과 반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염석진이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을 매우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어린 시절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잡혀서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후 일본의 첩자가 된 염석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인에게 아첨하고, 아내와 딸까지 서슴없이 죽이는 뼛속까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고, 가장 믿고 따르던 부하를 칼로 찌르는 그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왜 그랬냐는 마지막 질문에 "광복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울부짖는 염석진을 보는 관객들의 심경이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암살' 스틸컷/사진=(주)쇼박스
영화 '암살' 스틸컷/사진=(주)쇼박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춘원 이광수가 생각났다. 그는 사실 친일 행위를 하기 전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며 독립운동의 대열에 적극 참여했던 뛰어난 문학인이었다. 그가 반민특위 조사관의 심문을 받으면서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했소. 내가 걸은 길이 정경대로는 아니오마는 그런 길을 걸어 민족을 위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오"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친일과 반일, 애국심과 이기심 사이에서 방황했던 사람들의 심리를 암흑 같은 시기를 겪어보지 못한 지금의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미국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자신이 쓴 책에 나오는 유명한 살인자 두 명에 대한 르포를 쓸 때, "그 살인자와 나는 같은 집에서 살았던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앞문으로 나왔고, 그는 뒷문으로 나왔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암살'의 최동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주인공 염석진과 안옥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말을 인용했다. '암살'에서 투철한 애국심을 지닌 사람과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같은 집에서 나온 뒤 전혀 다른 방향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천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둔 '암살'은 재관람 열풍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단순히 오락성이 높은 영화가 아닌, 광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광복 70주년이다.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보다는 이제는 조금 더 진지하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광복을 조명해볼 때다.

친일과 반일, 애국심과 이기심 사이를 방황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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