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허무는 유쾌한 키치,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이현지의 컬티즘<64>] 아마추어의 세계에서 철저히 아마추어적인 방송을 하겠다는 의지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09.10 09:53  |  조회 13056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송은이&amp;김숙의 비밀보장' 홈페이지
/사진='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홈페이지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던 한 친구가 언젠가 갑자기 정치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자고 말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친구가 푹 빠져있던 것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였다. 젊은 층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나꼼수'는 당시 나에게도 매우 신선했다. 장난치는 듯한 광고들, 욕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출연자들, 어설픈 편집과 음향효과는 마치 대학 시절 친구들과 재미로 만들어봤었던 라디오 방송 같기도 했다.

'나꼼수'는 이런 키치적인 면으로 청취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천박한, 야한, 대중취미의'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키치적'이라는 형용사는 '나꼼수'의 프로그램 성격을 정확히 드러내주는 단어다. 낄낄 거리고, 욕설도 섞어가며 가볍게 말하는 분위기 속에 심각한 정치적 대립이나 정치적 이슈는 쉽게 오락화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아는 사람들만 아는, 관심 있는 사람끼리만 이야기하던 '정치이슈'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진다. 최근 인기 급부상 중인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이하 '비밀보장')'도 마찬가지다.

'비밀보장'은 시청자들의 고민 사연을 받아서 해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 사연과 비슷한 일을 겪은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해결책을 물어본다. 예를 들어, 혼전 순결에 대해 고민하는 시청자 사연을 가수 별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급격한 다이어트 후 노화된 얼굴에 대해 고민하는 사연에 대해서는 방송인 조영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 사투리로 고민하는 사연은 오렌지 카라멜의 리지와 개그우먼 김영희에게 전화한다.

/사진='송은이&amp;김숙의 비밀보장' 홈페이지
/사진='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홈페이지
연예계 소문난 마당발 송은이와 김숙의 인맥을 적극 활용한 이 방송은 마치 수많은 게스트들과 함께 하는 토크쇼 같은 느낌이 든다. 사소한 고민부터 법률상담까지, 다양한 고민들을 시작으로 연예인들과 함께 공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풍부한 콘텐츠가 완성된다. 소개팅 나갈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냐는 사소한 고민까지 나누면서, '사적인,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진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팟캐스트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 역시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팟캐스트는 애초에 프로들의 세계가 아니었다. 유튜브, 아프리카TV 등과 함께 대표적인 '아마추어들의 콘텐츠 플랫폼'이다. 개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스스로 녹음하고 편집해 올리고 개인 SNS를 통해 홍보한다. 이 아마추어의 세계에 프로들이 들어와 방송을 한다. 아마추어 세계의 포맷을 가져다가 프로들의 세계에서 활용하는 방식을 넘어서, 아예 그 세계로 들어와 아마추어적인 방송을 한다는 것이다.

대개 아마추어들의 문화, 즉 하위문화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주류 문화에 대비되는 비주류 문화, 저급 문화의 속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질서의 정당성과 주류문화의 가치를 의심하는 새롭고 이질적인 문화가 된다. 이 하위문화의 활력과 역동성이 가장 드러나는 경우는 지배적 문화의 압력에 저항하는 대항문화로 기능할 때다. 이 대항문화로써의 기능이 잘 형성되면, 구성원들에게 집단적 결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팟캐스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자본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 아마추어들의 콘텐츠는 시청자들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인다.

/사진='송은이&amp;김숙의 비밀보장' 홈페이지
/사진='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홈페이지
예로부터 주류문화는 끊임없이 비주류문화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모방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는 도중 교묘하게 스며든 자본에 의해 또 다시 스스로를 옭아매어 버리고, 새로움이 퇴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자연스럽게 촉발된 거리 응원 문화를 2006년 이후 대기업이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잃게된 것과 같은 경우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나온 응원도구들이 물결쳤던 자리에 대기업 프로모션 자동차가 놓여있는 모습을 봤을 때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 송은이와 김숙은 그러한 지점을 미리 간파하고 있는 듯 하다. 김숙은 "지금 여러분은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고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송은이에게 "아직 라디오 방송의 틀에서 못 벗어났다"고 구박한다. 대기업의 광고를 받지 않고 지인들이 직접 녹음한 광고를 틀어주고, 그 광고를 또한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승화시킨다. 스폰서를 해주겠다는 분들이 있지만 정중히 거절하겠다고 말한다. 아마추어의 세계에서 철저히 아마추어적인 방송을 하겠다는 의지다. 이들이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청취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유쾌한 키치적 콘텐츠를 제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경계를 허무는 유쾌한 키치,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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