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각오하고 쓰는 칼럼, 이상한 나라의 아이유

[이현지의 컬티즘<71>] '클래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11.12 09:15  |  조회 41830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로엔엔터테인먼트
/사진=로엔엔터테인먼트
아이유와 그의 노래 '제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도서출판 동녘에서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게재한 것을 봤을 때는 그저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출판사와 아이유 모두 공식 사과를 발표한 후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는다. 뮤직비디오 감독이 해명하고 허지웅, 진중권, 이외수 등 유명인들이 한마디씩 보태며 논란은 가중됐다. 급기야 아이유의 음원폐지 서명이 2만 명을 넘어가고 있단다.

아이유 노래의 가사와 뮤직비디오, 앨범 자켓 사진에 대해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글들은 논문을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마치 '다빈치 코드'에서 그림의 숨은 뜻을 찾아내듯이 아주 작은 부분, 혹은 0.5초 내로 지나가는 영상 속의 장면까지 잡아내어 소아성애 코드를 읽어내는 글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아이유의 과거 사진, 다른 노래의 가사, 과거 발언까지 찾아내서 소아성애 코드로 해석해 놓은 글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유가 정말 소아성애자들에 의한, 소아성애자들에 의한 소아성애자들의 상품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사실 소아성애 코드는 대중문화 전반에 흩뿌려져있다. 교복 입고 나와서 속옷이 보이도록 춤을 추는 걸그룹이나 그들의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장면들, 그리고 '삼촌팬'이라고 스스로를 명명하는 남성들까지 따지고 들자면 소아성애 코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물셋의 성인이지만 아직 아이 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 아이유 역시 그간 노래 가사나 춤, 뮤직비디오 등에서 소아성애 코드를 활용하고 있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사진=로엔엔터테인먼트
/사진=로엔엔터테인먼트
그렇다고 대중문화에서 소아성애 코드를 사용하는 것을 찬성한다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우리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나영이 사건'은 우리에게 소아성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됐었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소아성애 코드는 전 세계적으로 금기시되는 문제다. 일례로 지난 2011년 다코다 패닝이 찍은 향수 광고에 대해 영국 광고 규제 기관(ASA)이 '아동 성상품화'의 이유로 광고의 자국 내 유통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작품을 보는 주관적 시각에 대해서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다코다 패닝이 찍은 광고에 대해서도 다코다 패닝이 18세로 이미 성인의 나이인 점과 어떤 부분에서 선정적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항의가 첨예하게 부딪혔었다. 아이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제'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장면들에 포함된 소아성애 코드가 즉각적이고,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였나. 나는 이 논란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 부분을 전혀 읽어내지 못했다.

'동녘'이 공식 SNS에 올린 글은 노이즈 마케팅인가 의심할 정도로 소설 자체에 대한 해석부터 수준 이하다. 일단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는 제목부터 우습다. 제제가 어떤 아이인지 '동녘'이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것인가. 제제가 어떤 아이인지는 저자 바스콘셀로스조차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작품은 예술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라는 작품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그건 독자의 몫이다. 누가 감히 이 작품에 대한 정답을 운운하는가.

/사진=아이유 공식 페이스북
/사진=아이유 공식 페이스북
이쯤되면 사람들은 "그래서 넌 아이유 편이라는 거야, 뭐야"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되려 이 논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왜 이렇게 폭력적인가를 되묻고 싶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처럼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랑받는 작품을 '클래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클래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아이유가 제제에게서 섹시함을 봤다면 그건 아이유의 자유다. 그리고 그 해석을 기반으로 자신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도 자유다. 그것을 보고 즉각적으로 소아성애적 코드가 느껴져서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그 사람의 자유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표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미 사과까지 한 상황에서도 아이유를 비난하고, 음원폐지를 주장하고, 심지어 아이유를 옹호하거나 음원폐지에 동의하지 않기만 해도 거의 소아성애자처럼 취급을 받고 있다. 한 젊은 여성 소설가가 이번 사건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쓴 글 밑에는 '너도 변태'라는 식의 댓글이 무수히 달려있었다. 이 폭력적인 반응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과연 이 음원이 폐기를 요청할 정도로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적나라하고 낯뜨거운 소아성애적 코드를 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1970년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곡은 비관적이라는 이유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라는 곡은 불신감 조장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었다. 심지어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김'은 키 작은 대통령을 의식한 방송 관계자들이 알아서 금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터무니없는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당시 '공연활동 정화방안'에 따라 금지된 대중가요는 500여개가 넘는다. 금지가 해제된 지 30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우리는 강압이 아닌 우리의 의지로 다시금 검열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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