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이 기부가 되는 '퍼네이션'을 아시나요

[이현지의 컬티즘<74>] 재미(fun)와 기부(donation)의 결합…상생 이끌어내는 긍정적 기부 문화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5.12.10 10:08  |  조회 7168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Jinho Jung in Flickr
/사진=Jinho Jung in Flickr
최근 회사 내 점심시간 풍경이 달라졌다. 점심시간이 시작됨과 동시에 텅 비어버렸던 이전과 달리 요즘에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심지어 남자 직원들도 꽤 눈에 띈다. 매년 겨울마다 나오는 세이브 더 칠드런의 '신생아 모자 뜨기' 키트 때문이다. 모자 1개당 8시간, 연간 총 20시간 이상 봉사활동시간을 채우면 근무평점에 가산점을 받기도 하지만, 이렇게 재밌게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또 있을까. 한정 수량으로 제공되는 이 키트를 차지하기 위한 사내 경쟁은 늘 치열하다.

올해는 '신생아 모자 뜨기' 키트에 더해 국내 미혼모 및 빈곤국 신생아에게 보내지는 '사랑밭 배냇저고리 만들기', 해외 저개발국 빈민가 아이들에게 손수 만든 생애 첫 장난감을 선물하는 '세상을 바꾸는 착한 장난감' 키트도 나왔다. 덕분에 자원봉사나 기부에 관심이 없던 직원들도 꽤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 역시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생각에 열정적으로 모자를 뜨고 있다.
/사진=트리플래닛 캡처
/사진=트리플래닛 캡처
퍼네이션(funation). 이렇게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며 나눔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퍼네이션이라고 한다. 재미(fun)와 기부(donation)를 결합한 말이다. 지난해 여름 루게릭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된 '아이스 버킷챌린지'도 퍼네이션의 일종이다. 공연이나 행사 등 문화생활을 즐기는 게 기부로 이어지는 '컬처 퍼네이션'도 있다. 굿네이버스는 목표 후원금을 달성하면 추첨된 후원자들에게 뮤지컬 등 공연을 관람하고 연예인과 데이트할 기회를 제공하는 '즐거운 기부 Stand Us'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타트업 기업들을 중심으로 SNS나 게임을 통해 기부를 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웹이나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100m를 걸으면 1원씩 기부되는 빅워크, 게임에서 심은 나무를 실제 땅에도 심을 수 있는 트리플래닛, 통화 행위만으로 기부가 되는 기부톡 등 재기발랄한 아이템이 많다. 통화, 게임, 애플리케이션 등 스마트폰의 단순 사용만으로도 기부할 수 있는 기부앱도 인기다.
/사진=빅워크 캡처
/사진=빅워크 캡처
사실 퍼네이션이 등장하기 전에는 기부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돈을 내기엔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게 느껴졌고, 헌혈을 하기엔 건강이 염려됐고, 연탄 나르기 등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을 하자니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부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퍼네이션 상품들은 나와 같이 생각은 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기부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

퍼네이션은 확실히 상생을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기부 문화다. 기부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기부 참여도 늘어나게 한다. 1도 올리기가 힘들었던 사랑의 온도계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퍼네이션이 단순히 '기부'라는 이름을 내건 즐거운 게임만은 아니어야 한다. 기부의 의미와 그것이 전달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더해져야 한다. 퍼네이션이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와 나눔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즐거움이 기부가 되는 '퍼네이션'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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