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쏘리 린다" 이제 그만…20년 노력 결실맺은 디카프리오

[이현지의 컬티즘<83>] 각자의 분야에서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됐다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6.03.05 08:54  |  조회 28420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AFPBBNews=뉴스1
/AFPBBNews=뉴스1
바야흐로 채용시즌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신입 공채가 시작됐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지인들에게 전화가 온다. 말을 돌리고 돌리지만 결국 이번에 지원서를 내보려는데 내부상황이 어떤지, 될 가능성은 있는지를 물어보려는 것이다. 실력도 있고, 스펙도 좋은 친구들인데 번번이 떨어지고 마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이번엔 운이 안 좋았다거나 올해는 이 회사랑 인연이 없었던거라고 말끝을 흐릴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전 세계 팬들의 축하로 온라인은 아직까지 떠들썩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뛰어난 연기력과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보유했지만 오스카상을 수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994년 시상식에서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1993)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데서 시작해 '에비에이터'(2004)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까지 번번이 남우주연상에 실패했다.

사실 그가 상을 타지 못한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유명 배우들 중 오스카상을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배우들은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존 트래볼타, 톰 크루즈, 조니 뎁, 리암 니슨 모두 후보에만 올랐을 뿐 한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유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관전 포인트'가 되어버린 것은 왜일까.

예전에 가수 문희준이 누리꾼에 의해 끝도 없이 조롱당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콘텐츠들을 보고 웃고 있다가 문득 "근데 왜 이렇게 미움을 받는거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상도 마찬가지다.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한 것이 우습다!'라는 것 자체가 유행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문희준이 아무 이유 없이 누리꾼의 타깃이 된 것이 아니듯 디카프리오 역시 아무 이유 없이 그 타깃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가 너무 일찍 잘생긴 외모를 버리고 심각하고 어둡고 우울한 역할만을 골라했던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혹독한 고통을 받는 실존 인물을 좋아하는 오스카상에 딱 맞는 역할을 자주 맡으며 '오스카를 갈망하는 잘생긴 할리우드 배우'라는 희극성을 갖기에 완벽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정말 오스카를 받기 위해 발버둥을 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세간의 관심에 주목하지 않고 담담하게 영화와 환경문제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한 그이지만, 집에 가는 길에 소리지르며 기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번에 드디어 상을 받았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긴 했다. 대진운이 생각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자'에서 오스카 맞춤형 연기를 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위험이 될 적수는 없었다. 물론 20여년간 열심히 노력해 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운이 좋았어!"라고 말하는 것은 좀 미안한 일이긴하다. 하지만 20여년간 그에게 늘 하던 위로가 "운이 안 좋았어!" 아니었던가.

중학교 시절, 매점에 걸려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사진을 친구들과 함께 샀던 것을 아직도 기억난다. 꽃미모를 포기하고 20년을 노력한 결실이 맺어졌다. 본인보다 주변인들이 더 기뻐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제 그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양한 영화에 도전해볼 수 있으리라. 어쩌면 다시 예전의 꽃미모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아임쏘리 린다" 이제 그만…20년 노력 결실맺은 디카프리오
  • 페이스북
  • 트위터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