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 장르 드라마 '시그널' 벽 넘을까

[이현지의 컬티즘<84>] 공통점 많은 두 작품…'웰메이드' 장르 드라마 나오길 기대

머니투데이 스타일M 이현지 칼럼니스트,   |  2016.03.11 09:11  |  조회 15199
컬티즘(cultism). 문화(culture)+주의(ism)의 조어. 고급문화부터 B급문화까지 보고 듣고 맛보고 즐겨본 모든 것들에 대한 자의적 리뷰이자 사소한 의견.
/사진=tvN '피리부는 사나이' 홈페이지
/사진=tvN '피리부는 사나이' 홈페이지
초조했다. 오랜만에 전편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가 끝나가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시그널' 말이다. 처음에는 아쉬움도 많았다. 장르드라마로서의 정체성과 사건 구성의 치밀성이 아쉬웠고, 멜로적 요소들이 이 부분을 성급히 덮어버리려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리고 그 아쉬움과 불편함을 이 전 칼럼(☞ 이현지의 컬티즘 드라마 '시그널', 이제훈 연기력보다 중요한 것은…)에서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들었다. 여전히 장르적 내용의 깊이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주인공들의 연기력이 그 모든 것을 상쇄한다. 특히 구박하는 듯 하지만 어느샌가 뒤에서 챙겨주고 있는 '츤데레'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와 과거 순수한 모습과 지금의 냉철한 팀장 역할이 공존하는 차수현 형사(김혜수 분)를 보고 있노라면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

특히 김혜수는 배우로써 자신의 대체 불가능성과 카리스마를 이 드라마에서 확실히 각인시켰다. 도대체 그보다 카리스마 있는 강력계 형사 역할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겠으며, 그와 동시에 발랄하고 순수한 20대 초보 형사 역할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또 어디 있겠는가. 병원에 실려가는 이재한 형사에게 "좋아해요"라고 말하며 엉엉 우는 차수현의 순수한 모습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다양한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배우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미 촬영이 종료된 상황이지만 "이재한 형사를 살려달라"는 팬들의 호소글로 온라인 게시판이 떠들썩하다고 한다. 나 역시 이 둘의 행복을 염원하는 애청자로써 한 줄 보태고 싶은 심정이다. 동시에 드라마가 2회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 상실감이 들기도 한다. 그 와중에 등장한 비슷한 느낌의 장르 드라마 tvN '피리부는 사나이'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진=tvN '피리부는 사나이' 홈페이지
/사진=tvN '피리부는 사나이' 홈페이지
지난 7일 방송을 시작한 새 월화극 '피리부는 사나이'는 일촉즉발 상황에서도 끝까지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기 협상팀'과 시대가 낳은 괴물 '피리부는 사나이'의 대립을 그리는 드라마다. tvN '라이어 게임'의 연출 김홍선과 작가 류용재가 의기투합하며 시작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같은 tvN 드라마라는 것과 장르 드라마라는 것,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것,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 외에도 tvN '미생'의 김원석 PD와 범죄 수사물에 특화된 김은희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으로 초기 관심을 모았던 '시그널'과 여러모로 비슷한 느낌이다. 또한 이재한 형사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얽혔던 것과 같이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도 '피리부는 사나이'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얽힌다는 점이 비슷하다.

다른 점은 '협상'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다룬다는 점과 내용과 캐릭터를 설명하는 속도감이 놀랍도록 빠르다는 것이다. 이미 1회에서 주인공 주성찬(신하균 분)과 연인과 여명하(조윤희 분)의 삼촌이 죽고, 2회에서는 그 1년 후가 그려진다. 각 주인공의 성격이 짧은 시간의 대화와 행동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시그널'에서 아쉽다고 생각했던 장르 드라마로서의 정체성 역시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시그널'과 비교 당하며 아쉽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은 아직 초반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협상가'에게서 보기를 원하는 것, 예를 들자면 촌철살인 같은 말솜씨나 협상전략을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에 보여줘야 한다. 초반의 속도감, 그리고 전체적인 흐름과 개별적인 사건들의 균형을 잃지 말자. 설득력 있고 충실한 사건들로 이야기의 깊이를 채우자. 그렇게 한다면 김혜수-조진웅 정도의 '케미' 넘치는 커플이나 과거와의 교신이라는 판타지적 장치가 없어도 장르드라마로써 획을 그을만한 수작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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