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자 요즘 여자, 성의 노예가 된 사람들

Style M  |  2015.01.02 01:01  |  조회 1589

[김정훈의 썸㉚] 유흥을 즐기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사진=영국드라마 '스킨스' 스틸컷


성이 있다. 성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흥의 소리와 쾌락의 향기가 사람들을 유혹하면 성 밖에서 열심히 생산 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즐거운 소비를 위해 성 안으로 모여든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도 성을 방문한다. 성 안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화려하고 넓으며, 어둡고도 복잡한 곳이다. 특히 주말이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 성은 '즐기고 노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자유롭게 들어갈 순 있지만 쉽게 빠져나올 순 없다. 육체적인 속박이 있는 건 아니다. 화려한 조명과 흥겨운 음악, 그곳을 가득 채운 남녀들의 자극적인 움직임과 달콤한 말, 음주가무와 섹스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은 늘 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 영역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그렇게 성의 노예가 되고 만다.


물론 성을 방문한 모두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성 내부는 1층과 2층, 3층 이상의 고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성의 쾌락에 종속되기 시작하는 건 2층 이상을 즐겨본 사람들에 한해서다. 1층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페이를 지불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친구의 초대 등을 통해 무료로 입장할 수도 있다. 특별한 무리 없이 구경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에 성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방문하곤 한다. 1층엔 춤을 추기 위해 공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스테이지가 있다. 처음 성을 방문한 사람들의 목적은 이 스테이지에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성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성안의 분위기를 즐기다 보면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파온다. 편히 앉아 음료를 마시고 싶다면 입장료 이상의 돈을 지불해야 하고, 성 안의 물가가 바깥보다 훨씬 비싸다는 걸 깨닫는다. 술과 음식, 물은 기본이고 소파 자리에 앉아 쉬는 것도 엄청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좀 전까지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인상이 찌푸려지기 시작한다.


/사진=영국드라마 '스킨스' 스틸컷


그제서야 성 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술에 취한, 분위기에 홀린 광인(狂人)들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 그 이질감 속에서 과도한 지불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거북스런 사람들은 서둘러 성을 빠져 나간다. 그렇게 성 안의 어둠에 동화 되지 못한 사람들은 성 안의 분위기를 퇴폐라는 단어로 일축하며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이질감과 어색함을 견뎌낸 이들은 마침내 성 안의 어둠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해 버린다. 이들의 눈에 들어오는 건 성을 나가는 출구가 아닌,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소비가 시작된다. 그곳에 입성하기 위한 금액, 그 곳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필요한 술값은 성 밖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누군가에겐 부당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소비가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까닭은 그것이 일종의 능력으로 과시되기 때문이다. 스테이지에서 흥을 즐기는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관조적 입장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선사하고, '나는 너희와 다르다'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VIP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그렇게 계급이 탄생한다. 계급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건 명예나 학벌, 성격과 진정성 따위가 아닌 오직 돈이다.


이러한 소비의 주체는 대부분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스스로의 계급을 과시하며 여성들의 호감을 얻고 싶어 한다. 여성들 역시 굳이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들의 소비를 즐긴다. 그 맛에 길들여진 성 안의 여성들은 굳이 본인의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저 예쁘고 화려하게, 또 과감하게 스스로를 치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성 안의 문화를 즐길 수 있으니까. 그 계급 체계에 길들여진 남자들은 여성의 호감을 얻는 데에는 돈이 전부라는 공식에 점점 길들여지고, 여성들 역시 남성 의존적인 문화에 거리낌이 없어진다.


그곳에서 어떤 진정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데 소비와 낭비의 경계에서 돈과 시간, 감정과 정력을 마음껏 분출하는 사람들 중 간혹 진정성을 찾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결국 허무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과 물질의 교환에 뻥튀기가 있으니 감정의 교환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건 당연하다. 특정 장소라는 이유로 본래 갖고 있던 가치의 몇 십 배의 가격으로 평가되는 한 병의 술처럼, 사람에 대한 판단도 그렇게 뻥튀기 되는 거다.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만난 사람이 밖에서도 만족스런 경우는 드문 이유는 비단 어둠과 밝음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진=영국드라마 '스킨스' 스틸컷


성안의 모습은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대다수의 클럽을 은유한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를 꺼낸 건 그저 클럽의 분위기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클럽을 비롯해 헌팅과 원나잇 문화, 술집 등 현재 한국 유흥의 전반적인 부분이 포함된다.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그래서 성 밖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즉 그런 종류의 유흥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대립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성 안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트렌디하다 여기고, 성 밖의 사람들은 그들을 저질이라 평가한다. 그런 가치의 대립이야 개인차이일 뿐이니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요즘 남자와 여자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 마찰을 빚는 건 큰 이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성안과 밖의 사람들은 각각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요즘 남녀들을 정의해 버리니까.


연애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썸만 타다 상처를 받는 여성들이나 그런 가벼운 만남에 길들여져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성 안에 살고 있을 확률이 크다. 그들의 고민은 성 밖의 사람들로선 공감이 가질 않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 안의 사람들의 행동거지에 대해 비판할 권리는 없다. 누가 더 제대로 된 세상을 살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쾌락적인 성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자극에 대한 기대를 하며 성의 문을 두드린다. 그들역시 가끔, 점점 더 성의 높은 층을 향하는 자신의 모습에 허무해하며 창이 나 있는 곳을 찾고는 한다. 성 밖을 그리며 창문을 열어보기 위해 억지를 써보지만, 이내 들려오는 유흥의 소리와 쾌락의 향기는 다시 자연스레 성 안의 세계를 즐기게 만들어버린다.


성 안과 밖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따뜻한 연말이 됐으면 한다. 본인은 성 안의 상위층을 즐기면서도 성 밖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통해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부디 스스로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신년을 맞이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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