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이랑 하고 싶어"…여성이 말하면 '뉴스'가 된다?

Style M  |  2015.02.26 02:02  |  조회 999

[김정훈의 썸-37] 남성의 몸 더듬는 여성의 TV 속 모습…역차별 아닌 차별의 심화


썸. 묘한 단어가 등장했다. 짜릿한 흥분과 극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롤러코스터 마냥, 탈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간질 간질.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랑만큼 떨리지만 이별보다 허무한 '썸'. 그리고 편식남 편식녀를 비롯한 그 밖의 다양한 '썸'에 대한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의 토킹 릴레이.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1' 스틸컷/사진=무비꼴라쥬


어젯밤, 지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카트린 M의 성생활(카트린 밀레 저)' 라는 책을 알게 됐다. 전위적인 미술 잡지 '아트 프레스'의 편집장이자 현대미술평론가인 카트린 밀레가 18세부터 겪었던 성경험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기술된 이 책은 2001년 출간되자마자 30만부가 팔리고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한다.


불과 며칠 전엔 영국에 사는 한 노부인의 자유로운 성생활이 이슈화 됐다. 다른 한 켠 에선 '결혼한 남성 10명 중 3.7명이 간통 경험을 했다'라는 기사가 나왔지만 대중의 관심을 모은 것은 35년간 노부인이 관계를 가진 남자 수가 3000명이라는 뉴스였다. 노부인은 "평생 한 사람과 섹스를 해야 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섹스는 삶의 목적은 아니지만 열정이다"라고 말했다. 자유로운 성생활의 물꼬를 튼 것이 그녀의 남편이라고 밝혔지만 기사의 포커스는 오로지 그 노부인의 성생활이었다.


몇 년 전 한국에서는 '1000명의 남자와 성관계 할 것'이란 여성배우의 말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단지 한 인간의 성욕을 드러내는 것이 뉴스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대중들의 질타가 아닌 관심을 끌어 모으는 수단으로 작용한단 사실에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같은 이슈들의 주체가 남성이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대중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삶 전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서, 그 욕망이 1000명이나 되는 다수를 향해 있어서 이슈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출판사와의 회의에서도 이런 화제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여성작가는 자신의 성경험을 그대로 드러내기만 해도 충분한 이슈거리가 되지만 남성작가는 그래봤자 가벼운 야설쯤으로 읽힐 위험이 있다는 얘기였다. 어째서 여성의 성욕은 남성의 그것과는 다르게 해석되어 '새로운 것(NEWS)'이 되는 걸까.


'개가 사람이 물면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고 한다. 남성에겐 당연히 있는 성욕이 여성에게도 존재한다는 것, 그녀들이 그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것이 사람이 개를 무는 것 마냥 보통(normal)의 범주를 넘어선 일인 걸까? 여성의 성욕을 새롭고 신기한 것으로 소개해 버리는 과한 뉴스화는 여성들이 성적자기결정권을 갖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차별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켜버리는 좋지 않은 현상이다.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1' 스틸컷/사진=무비꼴라쥬


평등의 시작은 '여자가(혹은 남자가) 어떻게 그래?'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성에게도 성욕은 당연히 있다. 감정의 축적과는 상관없이 욕구나 자극에 이끌려 섹스를 할 수도 있고 그 제안을 먼저 할 수도 있다. 남성만이 자극과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고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틀렸다. 여성의 섹스는 자극을 위한 것이 아닌 감정에 기인해야 옳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감정대신 자극의 비율이 높은 섹스를 했다고 치자. 이 것이 비도덕적인 일은 아니다. 그 여성의 가치관과 위배되는 선택이었다면 그것에 대한 후회와 비난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밖에 없다. 물론 최고의 섹스는 감정과 자극이 완벽하게 결합된 상태일 거다. 다만 섹스 시 배합되는 감정과 자극의 비율은 저마다의 경험빈도와 그것으로 형성된 역치에 기인한다. 남녀의 구분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차이다. 그러니 여자라는 이유로 굳이 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남성만큼 성욕을 표현하는 여성이 신기한 존재도 아니다.


이러한 인식변화는 썸 단계에서 상처받는 여성들을 줄이기 위해서도 중요해진다. 상당수 여성들이 스킨십 후 변심한 남자에 대해 고민을 한다. 이때 '나는 당해버렸어'가 아닌 '그런 놈은 내 쪽에서 버린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야 덜 괴롭다. 상대방의 심리는 완벽히 알 수 없으므로 관계(sex든 relation이든)시 주체가 돼야 후회가 덜하다. 여성도 얼마든지 능동적인 스킨십을 할 수 있고 그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바탕이 돼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1' 스틸컷/사진=무비꼴라쥬


오랫동안 유지된 사회화는, 여전히 남자들이 섹스 할 장소를 찾을 동안 여자는 구실을 찾게 만든다. 남성에게만 능동적 성욕이 존재한다는 인식, 수동적이기만 한 여성의 표현력은 확실히 개선돼야한다. '왜 한국 여성들은 연애를 할 때 지나치게 남자에게 의존적이게 되는 거죠?'라고 물어온 후배에게 해줄 답변도 결국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성적자기결정권의 존중을 유독 터부시 시킨다. 기본적인 식욕과 성욕의 해소에 대한 주도권을 남성에게 빼앗겨 버린다면 관계는 절대로 평등해질 수 없다.


TV프로그램에서 몸 좋은 남자들의 몸을 어루만지며 즐거워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 역시 문제다. 이건 남성이 대한 역차별이라기 보단 오히려 여성의 차별을 더욱 심화 시킨다. 그 장면이 유희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 아닌 판타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강자가 약자를 지나치게 괴롭히는 것은 사건사고가 되지만 약자가 강자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건 드라마틱한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단순한 신체적 능력이면 모를까, 섹슈얼적인 측면에서 남자는 욕구를 푸는 강자이고 여자는 그 욕구의 해소대상이 되는 약자라는 인식을 양산해 내는 건 그만둬야 한다.


여성들이 남자의 멋진 몸을 보거나 만질 때 어떤 자극을 느끼는 지 필자는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어떤 성적자극을 느끼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의 성욕이 남성과는 다르게 1차원적 자극에서 오는 게 아닌, 보다 높은 정신적 차원에서 온다는 걸 뒷받침하는 강한 증거가 되곤 한다. 그런데 남녀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그녀들이 그들에 비해 자극을 좋아하지 않아서, 혹은 성욕이 덜 해서가 아니다. 건강미를 비롯한 1차원적 자극은 남성이 당연히 갖춰야 할, 특별하지 않은 기본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 제프리밀러는 '모든 동물들에게 있어 성 선택의 주체는 암컷이다. 인간의 남자가 가진 언어의 기술이나 따뜻한 마음, 관대함, 예술적 표현 등은 마치 동물들의 세계에서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깃털이나 화려한 무늬와 같다'고 했다. 건강하고 섹시한 남성의 몸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에게 있어선 그것들이 성적인 유희를 위함이 아닌, 생존과 직결된 훌륭한 남성의 조건일 것 이다. 그러니 그것만으론 흥분에 도달하기 쉽지 않은 게 아닐까.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라 생각하는 여성들도 많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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