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초카페'의 유행…남자도 얼굴·몸매까지 완벽해야?

Style M  |  2015.05.29 10:05  |  조회 761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9] 자연스러운 연애 - 시간이 지나면 본연의 맛 살아나는 '노지 소주'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한라산 소주


며칠 전에 맛있는 감귤이 몇 박스 들어왔다. 제주도에서 농장을 하고 있는 학교 선배가 선물로 보내준 것으로 당도와 신맛이 잘 어우러진 좋은 귤이었다. 기본안주로 내준 귤의 맛에 반한 몇몇 손님들은 추가로 몇 박스 주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오늘 역시 그런 손님들이 있었다. 한창 이성의 외모와 소개팅 성공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30대 초반의 남녀 그룹이었다. 좀더 자세히 얘기 하자면, 외모와 능력을 고루 갖춘 남성에 대한 예찬을 펼치는 화려한 여성 둘과 그녀들의 말에 별 수 없이 호응하고 있는 다소 촌스런 남자 둘이다.


"너희 '마초카페'라는 곳 알아? 요새 일본에서 엄청 인기래. 여기 봐. 서빙하는 남자들이 전부 섹시한 근육남들이지? 대~박. 역시 남자도 얼굴이랑 몸이 좋아야 해. 그렇지?"
"후터스는 가면 변태같고 마초카페는 유행이고.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딨냐! 요즘 소개팅도 그래. 능력 검증도 모자라서 사진까지 무조건 제출해야 하는 슬픈 남자들을 너희가 아냐?"


사진 속 근육남들에게 열광하고 있는 여자들을 보며 발끈한 남자가 불만을 토로했다. 외소한 체격의 그는 원형탈모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소개팅에서 퇴짜 맞은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그는 분노에 찬 손놀림으로 들고 있던 귤을 까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귤을 좋아하지 않는 듯 했다.


그는 테이블에 떨어진 귤껍질을 의아하게 쳐다보더니 내게 물었다. 이렇게 꼭지 부분이 초록빛을 띠거나 껍질이 푸르스름한 것들이 원래 맛있는 거냐며, 분명히 안 익은 것 같은 색깔인데 어떻게 이렇게 맛이 풍성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그들에게 퀴즈를 냈다. "잘 익은 귤은 무슨 색이어야 할까요?" 마초카페를 소개한 여자가 먼저 샛노란 색이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마치 혼자서 알고 있는 숨겨둔 지식이 있는 것처럼 조금 우쭐해진 억양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귤은 익어도 색갈이 파란 것이 정상이에요. 시중에 유통되는 노란귤 중엔 잘 익은 상태의 파란색 귤을 에틸렌이나 카바이트가스로 노랗게 만든 것들이 많거든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그게 아니죠. 방금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예요."
"네?"
"노란색 귤이라고 전부 약을 친 거라 생각해서도 안돼요. 사장님이 말씀하신 건 우리가 흔히 먹는 조생귤에 한해서 적용되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극조생 감귤일 경우에 말이죠. 극조생 감귤은 속은 완전히 익어도 겉까지 100% 착색이 안 되거든요. 그때 껍질이 푸릇푸릇 한 걸 100% 익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강제로 착색처리를 하는 거예요. 귤은 익으면 노란색이 되는 게 맞죠. 물론 여름에 나오는 하우스감귤은 일교차가 적어서 배송시에 푸른빛을 띄긴 하지만요. 강제로 후숙하지 않은 감귤 역시 꼭지 부분이 초록빛이 나구요."


그들도 놀랐지만 나도 놀랐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뻔 했다는 사실보다 그녀의 해박함에 놀란 것이다. 요리센스나 연애경험이 풍부한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의 전문 지식이라니. 아, 여기서 그녀란 지난주 갑자기 찾아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던 일전의 멘보샤녀다(☞ 별의별야식 5화 참고).


그녀는 정말로 이번주 월요일부터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정상적인 고용을 위해선 이력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한귀로 흘려버린 것 같다. 비정상적인 고용형태도 얼마든지 괜찮지 않겠냐며 다짜고짜 주방에 들어가버린 그녀를 막을 논리가 없었다. 첫째, 분명히 사장님이 먼저 근무를 제안하지 않았냐는 그녀의 말은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둘째, 그로인해 이 어려운 취업난 속에서 다른 취업기회를 다 버리고 이곳에 왔으니 일을 하게 해 달라는 말에도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난 정확한 신분도 확인되지 않은 여자와 하루 12시간 씩 4일째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을 하는 중이다.


그렇게나 비밀을 고수하려는 그녀를 대하는 의심가득한 내 눈빛이 귀찮았는지 본인에 대해 몇 가지 알려준 정보가 있긴 하다. 모 대학교 4학년 휴학 중이라는 것과 최근 1년 간은 유럽여행을 하며 방랑했다는 것. 사정상 본인의 신분을 노출시킬 수가 없으니 한 달만 이해해 달라는 것과 한 달 후에 문제가 발생한다든가 하면 스스로 가게를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맛있는 귤 고르는 법 아시죠? 너무 보기 좋고 예쁘고 번들거리는 건 피해야 하는 거. 그건 전부 인공적으로 처리된 거란 말이죠. 좀 울퉁불퉁하고 흠집도 군데군데 난 게 싱싱하고 맛있는 거예요. 얘기 나누시는 거 들으니까 너무 지나치게 남자 외모를 따지시는 거 같더라구요. 완벽한 기준이랑. 에이~ 그러지 마요. 조금 못생기더라도 맛있는 귤일수록 껍질이랑 알갱이 사이가 비어있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는 법이거든요. 불안하지않게 말이죠."


영화 '신부들의 전쟁'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확실히 그녀는 요리를 잘했고 서비스 마인드도 좋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분위기 파악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사실 여자 손님들의 화려한 외모는 의술의 힘을 빌린 티가 확연히 났고, 그녀들의 눈빛은 확연히 변해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신비스런 알바생은(그녀는 사실 남자들의 시선을 빼앗을 만한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다) 그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난 서둘러 창고에 가서 한라산 소주 두 병을 갖고 왔다.


"이건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아까 귤 이야길 잘못 알려드려서 사과의 의미로." 여자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진 걸 확인한 나는 그녀에게 주방으로 들어가란 눈치를 줬다. "이렇게 먹는 걸 노지 소주라고 해요. 원래 귤을 재배하는 방식인데 따로 하우스나 시설 처리를 하지 않는 거죠. 냉장고에 보관한 소주는 본래의 참 맛이 떨어지거든요. 처음 먹으면 너무 미지근해서 맛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게 진짜 소주 맛이죠. 알콜 맛은 날리고 소주 본연의 묵직함은 살린. 그래서 맛이 더 풍부해진 상태의 노지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아까 저희 종업원이 한 이야기도 그런 거예요. 뭐 인공적인 것도 분명 필요하고 내면만큼이나 외모도 중요하긴 하지만, 연애를 할 땐 자연스러운 게 나쁘지 않단 거죠. 시간이 지나면 쓴 맛도 어차피 자연스레 날아가고 본연의 맛이 드러나니까요. 굳이 아름답고 완벽하게 만들려고 억지로 노력 하지 않아도 좋아요."


다행히 여자 손님들의 기분은 풀어졌다. 나의 설명 때문인지 노지 소주의 맛을 알아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공짜로 소주 2병을 먹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주방에 있던 그녀가 문을 나서는 손님들을 향해 힘차게 인사를 하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아! 전 과일 중에 귤을 참 좋아하거든요. 귤은 겉이 먼저 익기보단 속이 먼저 익는 과일이래요. 아까 귤 안 드시는 거 같던데 앞으론 귤을 더 좋아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어떤 인공적인 노력 없이 자연스레 그녀와 가게를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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