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시간 달라는 남자 친구, 혹시 다른 여자와?

Style M  |  2015.06.26 03:06  |  조회 600

[김정훈의 별의별 야식-13] 겉과 속이 다른 '빠네 파스타'…표현하지 않는 연인의 속내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사진=O'live


안전한 고독이란 말이 있다. 나도 최근에 알게 된 단어인데 그 울림이 깊어 따로 메모를 해뒀다. '안전함'이란 단어와 '고독'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는데 두 단어의 단순한 조합이 이렇게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단어를 접하게 된 건 좋아하는 지인이 소개해준 '어쿠스틱 라이프'란 웹툰을 통해서다. 작가인 난다와 그의 남편 한군, 그리고 주변인들의 일상생활을 재치있게 그려낸 생활웹툰으로 수년째 베스트셀러로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난다는 남편 한군이 출근한 후 조용한 집에 혼자 남아 안전한 고독을 즐긴다. 본인에게 최적화된 공간에서 돌아올 사람이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은 채로 즐기는 안전한 고독감. 이 말에 나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한 걸로 안다. '나에게 최적화된 공간', 그리고 '돌아올 사람'이 두 요소 모두가 상실돼 버린 30대들은 더더욱.


만화가 너무 좋길래 구매한 단행본을 가게에 비치해 놓았다. 엊그제 저녁인가, 소이가 그 만화를 뒤적이고 있는 걸 봤다. 20대 초반인 소이는 어떤 리액션을 보일까 기대하며 표정을 살피고 있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이 책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안전한 고독이 실려 있는 화가 펼쳐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없어? 별로 재미를 못 느낀 표정인데"
"아뇨. 재밌는데요? 근데 사장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막 연애를 하고 싶어지거나 하진 않아요. 특히 안전한 고독감이란 게 생각만큼 와닿진 않구요. 이건 확실히 결혼 적령기의 사람에게 더 감흥을 줄 것 같은데요?"
"왜?"


"우선 저 같은 경우엔 최적화 된 공간이란 게 아직 부모님이 함께 사는 집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죠. 돌아올 연인이 있다는 건 참 낭만적이지만, 그것 역시 결혼을 하지 않은 이상 언제나 의심해 봐야 하구요.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어떻게 알아요. 결혼도 안했는데"


손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소이와의 대화는 끊어졌다. 오늘 준비한 음식은 빠네 크림 파스타였다. 안전한 고독감에 꽂혀 메뉴로 정한 거다. 빠네(pane)는 원래 빵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프랑스 사람들이 바게트를 먹는다면 이탈리아에선 토스카노라고 하는 원형의 빵을 요리와 함께 곁들여 먹는데 우리가 '빠네'하면 떠올리는 바게트롤빵이 바로 이 토스카노 빵이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이 빵을 사든지 만들든지 해서 속을 조금 파낸 뒤 무엇이든 넣으면 된다. 그 중에서도 부드러운 화이트크림, 혹은 매콤한 로제크림소스 파스타를 넣은 빠네 크림 파스타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좋다. 빠네 파스타를 처음 먹어본 건 대학교 1학년 시절 소개팅으로 방문한 레스토랑 이었다. 아, 그 보다 더 오래 전 시내의 제과점에서 비슷한 형식으로 제공하는 크림 스프를 먹어본 적은 있었지만. 표현을 하지 않는 남자의 속내를 알아내고 싶다는 손님들에게 빠네 파스타를 내어주며 옛 생각이 났다.


/사진=소유X어반자카파 '틈' 뮤직비디오 영상화면 캡처


"참 섹시한 음식이지 않아? 딱딱한 빵 안에 들어 있는 부드러운 크림. 남자들 같이 말이야"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한 없이 여리고 부드러운 남자들의 성격이 빠네 파스타를 닮았다며 그녀는 웃었다. 빠네 파스타가 섹시하단 말이 이해가진 않았지만 그걸 먹는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웃으면 완전히 반달모양이 되는 눈을 다시 초롱초롱하게 뜨고 크림에 젖어 있는 바게트 빵의 속살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거칠게 뜯어내 한 입에 먹는 그녀의 모습이란.


그런 그녀와의 연애가 실패한 이유가 바로 안전한 고독이란 걸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일 때와 변함없이 서로에게 고독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존중하지 않았던 거다. 고독을 필요로 하는 그녀보다 그게 필요없다 이야기하는 내가 훨씬 더 진정한 사랑을 하고있다 생각했다.


"넌 마치 도마뱀 같아. 언제든 꼬리를 끊고 도망가 버릴 수 있을 것 같거든. 새로운 꼬리는 언제든 자라잖아? 난 네가 남긴 꼬리의 토막이 싸늘해져 가는 걸 보며 괴로워하겠지만"


내가 더 사랑한다는 자만에 빠졌었다. 그래서 그녀가 노력하며 쌓던 신뢰에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해 버렸다. 참 미안하다. 그녀는 도마뱀도 아니었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강한 신뢰가 있었기에 그러한 고독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문득 들었다. 나는 뭐가 그리 불안했던 걸까.


그 이후 안전한 고독감에 대해 알게됐다. 상대가 그 고독을 즐길 때 나 역시 그걸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운 거다. 그걸 위해선 그녀에게 최적화된 공간이 무조건 내 옆이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는 게 필요했다. 더 안락하고 쾌적한 공간을 내가 마련해줘야 한다는 강박 역시 불필요한 감정이다. 연인에게 필요한 건 오롯이 혼자 즐길 수 있는 한 평의 소파여도 충분할지 모른다.


/사진=소유X어반자카파 '틈' 뮤직비디오 영상화면 캡처 


혹시나 연인이 그 고독을 요구할 때, '내가 준비한 공간이 아닌 더 쾌적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그러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일종의 자격지심이다. 그러니 상대가 고독을 요구한다 해서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고독의 시간 후 상대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 확실히 믿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 역시 당신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을 거란 걸 확실히 믿고 자신에게 고독한 시간을 선물하는 거니까. 상대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의심부터 지우는 게 즐거운 연애의 첫 단계다.


"그래도 그 개인 정비의 시간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죠? 둘보다 혼자가 더 편안하다는 걸 느끼게 될 만큼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되잖아요"


소이가 그릇 정리를 하며 내게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안전한 고독감이란 걸 자연스레 즐기기 위한 신뢰의 굳기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으니까. 지나치게 안심했다가 벌어진 무수한 불상사들을 직간접적으로 우리는 경험해왔다. 그래서 오래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형으로 꼽는 1순위 중 하나가 바로 의리다.


아, 빠네 파스타를 먹을 때도 주의할 점이 있다. 파스타의 안전한 고독을 지켜주느라 뚜껑을 덮은 채로 빵 속의 내용물을 지나치게 오래 놔두면 안 된다는 거다. 그럴 경우 빵 내부가 먹지 못할 정도로 흐물흐물 해진다. 아무리 단단하게 보인다 해도 빵의 갑옷을 지나치게 방치하면 안 된다. 적당한 시기에 뚜껑을 열고 파스타를 먹는 것, 그 후 적당히 야들야들 해진 빵을 크림과 함께 먹는 게 개인적으론 빠네 파스타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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